메르켈, 맞수를 국방장관에 라이엔 지명… 차기 총리 후보에 유리한 입지
입력 2013-12-17 03:27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대립하던 여성 정치인이 처음 국방장관에 지명됐다. 국방부 장관은 각료 중 서열이 가장 높은 자리로 차기 총리 후보로까지 비중 있게 거론되고 있다. 자녀 7명의 어머니이기도 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55) 노동부 장관이 주인공이다.
메르켈 총리는 15일(현지시간) 라이엔 장관을 국방부 장관에 지명하며 “그는 항상 국제 이슈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며 “(국방부 장관이라는) 도전적인 업무를 잘 해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독일에서 국방부 장관에 여성이 임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메르켈 3기 정부는 17일 출범한다.
메르켈 총리와 같은 기독민주당(CDU) 내에서 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라이엔 장관은 2005∼2009년 가족여성부 장관, 2009∼2013년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는 동안 메르켈 총리와 수차례 충돌했다. 특히 여성 임원 쿼터제 등 여성인권 문제를 놓고 메르켈 총리에 대한 비판 발언을 자주 했다. 최근엔 제1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의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마찰을 빚었다.
그가 국방부 장관에 지명되면서 차기 총리 후보로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됐다. 외신들은 2017년 메르켈 총리가 물러나면 뒤를 이을 1순위 후보로 라이엔 장관을 꼽고 있다. 가디언은 “메르켈 총리가 누구에게 자기 자리를 넘기고 싶은지 선택했다”고 보도했고, 로이터는 “메르켈 총리를 이을 후계자로 강력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전했다. 슈피겔은 “CDU의 왕위를 이을 공주 자리에 앉게 됐다”고 평했다.
라이엔 장관이 국방부 장관으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면 메르켈 총리가 중도 사임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임기 중 사임할지 모른다는 일각의 예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라이엔 장관은 자리를 걸고 진보적인 사회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여러 차례 비치면서 대중의 인기도 얻고 있다.
그는 니더작센주 총리를 지낸 에른스트 알브레히트의 일곱 자녀 중 한 명이다. 성공적인 정치 활동과 성공적인 육아의 양립 가능성을 증명한 라이엔 장관에 대해 독일 언론은 ‘슈퍼엄마(Supermutti)’라고 칭한다. 의사, 의대교수로 일하다 42세에 정계에 진출한 늦깎이 정치인인 그는 국방 부문 관련 경험이 전무하다.
라이엔 장관이 국방부 장관이 되면 유럽연합(EU) 회원국들 간 군 통합에 박차가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