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보험왕 뒤엔 불법의 그림자

입력 2013-12-17 01:29


A사의 초년병 보험설계사 B씨의 기상시간은 최근 평소보다 빨라졌다. 남들과 같은 수준으로 일해서는 입사 때 목표인 ‘보험왕’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동료들이 고객 정보를 몽땅 가지고 다른 보험사로 옮겨가면서 더욱 초조해졌다.

회사에 남은 B씨는 ‘맨땅에 헤딩’을 해야만 했다. 친구들과 친척이 소개해 준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발품을 팔았다. 반응은 늘 신통치 않았다. 보험 얘기만 나와도 차디찬 얼음벽이 쳐졌다. 어쩌다 그 벽이 무너지면 ‘리베이트’의 벽이 생겨났다. 보험에 가입하면 어떤 선물을 줄지,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등을 묻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분명 불법이다. 합법적으로 줄 수 있는 건 ‘1만원 빵집 상품권’인데 바라는 건 ‘10만원 백화점 상품권’이었다.

B씨도 현실에 무릎을 꿇었다. 월 보험료 100만원을 채우면 ‘시책금’으로 회사에서 30만원을 더 받을 수 있었다. 한 달 내내 열심히 했지만 모은 보험료는 90만원 수준이었다. 결국 자신이 대신 보험료를 내주는 조건으로 무리하게 보험 가입을 유도했다. 결국 돌아온 건 대부업체의 독촉전화였다.

보험왕이 되기 위해 리베이트는 약과였다. ‘가짜 계약’으로 6개월 만에 BMW를 끌고 나온 한 동료는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생명보험 판매 분야의 ‘명예의 전당’이라는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백만 달러 원탁회의)에서 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심지어 고객정보 빼내기 전쟁도 벌어진다. 회원이 많은 인터넷 카페에 ‘며칠만 운영자를 시켜주면 얼마를 주겠다’고 한 뒤 정보만 빼내는 설계사들도 있었다. 이 역시 보험업계에서는 억대 연봉 보험설계사가 되는 과정으로 미화됐다. 보험사들은 고액 설계사의 불법행위를 발견해도 이렇다 할 처벌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원도 고민에 빠졌다. 금감원은 국내 대표 금융사인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의 보험설계사가 고객들에게 과도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Y씨와 K씨는 지난달 13일 경찰청 특수수사과 조사 결과 각각 약 3억5000만원, 2억2500만원을 보험 계약 대가로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에겐 최고 징계인 ‘등록취소’ 대신 ‘업무정지’가 내려질 전망이다. 이들에게 붙은 보험왕 타이틀 덕분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두 설계사가 보험왕이 되면서 장관상을 받은 경력이 감면 사유가 된다”며 “제재 수준 결정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6개월 내외의 업무정지가 최대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과 경찰 모두 혐의 입증에 애를 먹고 있다. 경찰은 Y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증거 부족을 이유로 기각됐다. 금감원도 해당 보험왕이 속한 지점 검사를 마쳤으나 보험왕들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제재심의실로 넘기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차원의 징계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보험설계사의 불법행위가 만연한 이유다. 금감원은 이번 건 역시 개인의 문제로 보고 회사로까지 징계를 확대하지 않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영업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회사가 보너스를 주는 걸 문제라고 볼 수 없지 않느냐”며 “다만 회사 차원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진삼열 이경원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