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못믿을 기업 신용등급… 乙인 신평사, 甲 비위 맞추느라 ‘소신 평가’ 어려워
입력 2013-12-17 01:34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등급을 깎인 기업 10곳 중 3곳은 기존 신평사와의 관계를 끊고 다른 신평사를 찾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동양 사태에서처럼 국내 신평사가 시장에 사전 경고음을 울리기 어려웠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신평사와 금융투자업계는 ‘갑을관계’가 지속되는 한 잘못된 기업 평가로 신용을 기반으로 한 자본시장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지난해 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22개월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기업 32곳 중 22곳(69%)만이 고객으로 유지됐고, 10곳(31%)은 타 신평사로 이동했다고 16일 밝혔다. 한기평이 이 기간 신용등급을 낮춘 기업은 총 75곳이지만 하향 이후 기업어음(CP) 등 채권을 발행하지 않은 43곳은 통계에서 빠졌다. 한기평은 “신용등급 하향이 고객 이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업계가 전하는 신용평가 현실은 심각하다. 한기평 관계자는 “기대 이하의 신용등급이 나오면 자신의 재무실적을 돌아보지 않고 막무가내로 불만을 토로하거나 거래를 끊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기업은 신평사 3곳 중 2곳에서만 평정을 받으면 회사채·CP 등을 발행할 수 있다”며 “낮은 점수를 준 1곳은 배제되기 때문에 눈치싸움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도 소신 있는 문제제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토로한다. 하이투자증권 김익상 연구원은 “위험을 알리는 리포트를 쓰면 해당 기업은 물론 신평사 내 영업 부서와 해당 기업의 개인투자자들 모두 항의를 한다”고 말했다. 동양 사태 이후 LIG투자증권은 한 그룹의 재무구조가 동양과 비슷하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냈다가 법적 대응 등 거센 항의를 받고 수정 리포트를 냈다.
금융감독원은 2009년부터 신평사의 내부 평가 조직과 영업 조직을 분리토록 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국내 3대 신평사를 특별검사 중인 금감원은 신평사들이 동양그룹의 법정관리 직전에야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이유와 함께 이러한 내부통제 기준이 잘 지켜졌는지 살피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조직관리 등 제반 상황을 폭넓게 점검 중”이라고 밝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