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영상 채증이 생명” 카메라 쥔 채 얌체 상인·취객과 종일 실랑이

입력 2013-12-17 02:48


지하철 보안관제 도입 27개월 2호선 열차 내 단속 현장 가보니

“저기다!”

지난 5일 오전 11시9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봉천역으로 향하는 열차가 플랫폼에 서자 두 남자는 나지막이 외치며 열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가득한 승객 사이를 비집고 네 번째 칸에 도달하자 승객들 틈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머리 위로 ‘비장의 무기’ 디지털카메라를 빼꼼 들어올렸다. 이를 눈치 챈 장모(55·여)씨가 승객들에게 팔던 고무장갑 상자를 황급히 덮었다.

“안녕하십니까. 지하철 보안관입니다.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이들에게 끌려 열차에서 내린 장씨는 울 듯한 표정으로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다”고 둘러댔다. 보안관이 “어제도 저한테 걸리셨잖아요. 더는 안돼요” 하자 금방 표정을 바꾸더니 “내가 죽을죄를 졌어? 도둑질을 했어? 먹고살겠다는데 왜 이래” 하며 삿대질을 했다. 보안관이 경찰을 부르겠다며 휴대전화를 꺼낸 뒤에야 장씨는 마지못해 인적사항을 적었다.

서울메트로 지하철보안관 윤병준(32) 김현(29)씨의 흔한 일상이다. 신도림∼교대 구간을 담당하는 이들은 서울메트로에서 가장 많은 단속 실적을 올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하철 시민 불편·불안 요인 해소책의 일환으로 ‘지하철 보안관’을 도입한 지 2년 3개월이 됐다. 주 업무는 성범죄 예방과 이동상인·구걸자 등을 단속하는 것이다. 2011년 도입 당시 70여명이던 보안관은 141명으로 늘었다. 단속 건수도 연간 3만8420건에서 17만4232건으로 급증했다.

사법권이 없는 지하철 보안관에게 필요한 건 딱 세 가지. 디지털카메라와 장부, 필기구다. 위법 행위를 목격해도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처벌할 수 없다.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지 못하고 퇴거 조치만 한다. 역에서 내보낸 이동상인을 다음 역에서 마주치는 일도 흔하다.

3만∼5만원 과태료는 열차 이동상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윤씨는 “이동상인 월수입은 200만원에서 300만원에 달하기도 한다”며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있어 100만원 가까이 쌓인 과태료를 아예 안 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는 과태료를 내더라도 장사하는 게 이익이라며 얌체 장사에 나서기도 한다.

오전 11시부터 두 보안관을 따라다닌 2시간 동안 적발된 건 10여명인데 과태료가 부과된 건 장씨뿐이었다. 퇴거 조치를 했는데 다시 열차에서 마주친 이도 3명이나 됐다. 일부 상인은 보안관에게 “어제 봤는데 또 만났네”라며 ‘친분’을 드러낼 정도로 단속에 익숙했다.

낮 동안 이동상인과 실랑이를 벌인 보안관들은 해가 지면 취객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군 특수부대와 경호업체 출신이 대부분인 보안관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취객이 몸싸움을 걸어와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김씨는 지난달 역사 기물을 부수는 취객을 저지하려 붙잡았다가 폭행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도 발걸음을 붙잡는다. 윤씨는 “장애인이나 할머니들이 ‘부모 같은 사람인데 좀 봐주라’며 혀를 차면 힘이 빠진다”고 했다. 김씨도 “시민을 위해 일하며 시민의 비난도 견뎌야 하는 게 속상하다”고 고백했다.

단속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치는 일은 빈번하다. 지하철경찰대가 2006년 227명에서 올해 108명으로 줄면서 지하철보안관의 역할이 커졌지만 사법권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도시철도운영기관 임직원에게 제한적으로 사법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공권력 남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아 법 개정이 쉽지만은 않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