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속에 숨은 전혀 다른 개념들… 금호미술관 ‘경계의 회화’ 작가 8명 작품
입력 2013-12-17 01:34
얼핏 보면 자연을 그린 풍경화 같다. 하지만 풍경 속에는 작가의 삶에 대한 상념이나 사회에 대한 인식 등이 담겨 있다. 허수영 작가의 ‘Rainforest’를 보자. 비온 뒤 숲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짐작되지만 가까이서 보면 갖가지 동식물들이 엉켜 있다. 동식물도감의 각 페이지에 실린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꽉 채운 그림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대해 얘기한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내년 2월 9일까지 열리는 ‘경계의 회화’에는 자칫 구태의연해보일 수 있는 풍경화를 개념적인 회화로 재구성하는 작가 8명의 작품을 모았다. 풍경을 그리되 그 이면에 숨어있는 개념 사이의 경계를 표현하는 회화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어떤 태도로 작업에 임하는지에 따라 풍경의 이미지는 달라진다.
‘설악산 화가’ 김종학은 부귀영화와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모란꽃을 그린 10폭 병풍을 내놓았다. 작가 특유의 꽃그림이지만 한걸음 다가가면 병풍마다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산수 그림을 통해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민정기는 단종의 유배지를 그린 ‘청령포 관음송’, 자연의 역사성을 고지도 형태로 옮긴 ‘벽계구곡도(蘗溪九曲圖)’를 출품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를 그린 임동식의 ‘원골에 심은 꽃을 그리다’, 숲과 계곡 가운데 각종 동물들을 숨겨 놓은 황지윤의 ‘달빛 그림자’, 몽환적인 풍경으로 인간의 고독을 표현한 공성훈의 ‘모닥불’, 극사실적인 풍경화로 명상 이미지를 전하는 김보희의 ‘Towards’, 평범한 장면으로 기억의 공통분모를 제시하는 김현정의 ‘하늘 안의 하늘’이 저마다 메시지를 전한다(02-720-5114).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