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정한 (10) 기차역 밤샘 작업으로 빚어낸 ‘뉴욕의 거지들’
입력 2013-12-17 02:39
미술 공부의 기본은 드로잉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적인 장면을 재빠르게 기록을 해 놓아야 나중에 멋진 그림으로 기억을 되살려 그릴 수 있다. 드로잉은 예술뿐만 아니라 인성을 발전시키기도 하고, 모든 기초과학에 기초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모든 창조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나는 학교 공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익숙해지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시튼홀 대학에 다니고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뉴욕스튜디오스쿨(nyss.org)에서 그림공부를 했다. 지금은 학사 자격을 주는 이 학교는 실기 중심으로 학생을 지도하는 높은 수준의 예술학교다. 이 학교 그렘닉슨 학장은 ‘예술 조련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분이었다. 나는 여기서 공부하며 깊이 있는 미술의 세계에 흠뻑 빠져 지냈다.
학교에 가려면 뉴욕 34번가 펜실베이니아 역에서 내려야 했다. 나는 기차통학을 하면서 기차 안에서 열심히 드로잉을 했다. 실기를 중시하는 이곳에서 공부하다 보면 밤 12시쯤 출발하는 마지막 기차를 놓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다음날 첫 기차는 새벽 4시가 넘어야 한다. 이 경우 학교로 돌아와 작업실에서 계속 미술작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다음날 수업이 없으면 아예 밤새 펜실베이니아 역에서 드로잉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새벽 첫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은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훌륭한 개인 작업실이었다. 이때 잠을 자려고 역 안으로 모여드는 뉴욕의 거지들은 나의 전속 모델이었다. 역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나의 스케치북 고객이었다.
미국이 선진국이지만 여전히 뉴욕에는 집 없는 거지들이 많다. 특히 역 주변에는 많은 거지들이 살고 있다. 열차를 놓친 내 모습도 작업하느라 흘린 땀과 목탄과 물감으로 온 몸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주변의 거지들과 비교해도 별반 차이 없을 만큼 누추했다. 그들도 나를 보며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라 여겨진다. 뉴욕커들도 나를 보며 ‘동양인 노숙자’로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 하루는 내가 ‘중국인 거지’라 생각했는지 같은 중국인이 빵과 음료수를 조용히 건네주고 갔다. 나는 화내지 않았고, 그것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역에서 졸다 일어나 보면 거지들이 옆에서 나와 같이 자고 있었다. 의자에서 잠을 자다 보면 역 승무원들이 밖으로 나가라고 쫓아내기도 했다.
한번은 기차 안에서 표를 검사하는 차장이 내 남루한 겉모습만 보고 기차에서 내리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즉시 학생증을 꺼내 보여 위기를 모면했다. 이 34번가 펜실베이니아 역 대합실에 근무하는 제인이란 이름의 흑인 여자 경찰관과는 아주 친하게 지냈다. 그녀는 대합실에서 자는 나를 깨우다 처음 만났다. 내가 그녀를 스케치한 작품을 선물하자 아주 좋아하면서 친해졌다. 자신의 딸도 그림을 전공했으면 한다며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주면서 이곳은 아주 위험하니 무슨 일이 혹시 일어나면 즉시 자기에게 연락하라는 친절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의 말이 기억난다.
“미스터 리, 내가 25년간 뉴욕 경찰 생활을 했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보았어요. 그림을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멋있게 잘 그리고 또 그렇게 쉽게 나눠주나요. 당신은 사람들을 편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어요.”
나는 그녀에게 바로 그 이유가 예수를 믿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면서 그녀를 전도하지 못한 것을 이제 와서 후회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역에서 또 열차 안에서 그린 드로잉 작품만으로 2010년 ‘뉴욕의 거지들’이란 드로잉 저서를 한국에서 발간하기도 했다.
학교를 오가며 울고 웃었던 뉴욕의 시간들, 이 뉴욕 거지들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작은 스케치북에 담겨 귀중한 추억, 잊지 못할 뉴욕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다.
정리=김무정 선임 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