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최초 교회인 썽콘교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입력 2013-12-16 15:53 수정 2013-12-16 16:21

라오스는 인구의 90%가 소승불교를 믿는 불교국가다. ‘미소의 나라’와 ‘쉼표의 나라’로도 불리는 라오스엔 ‘사원이 없으면 마을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의 내륙국인 라오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1000 달러 내외로 아시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지만,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다. 혹독한 내전으로 외부 세계와 20년 넘게 고립돼 있던 라오스는 아직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1980년대 후반 신경제 제도를 도입하면서 세계를 향해 조심스럽게 빗장을 열어 왔다.

건기가 시작된 지난달 말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 도착한 취재진은 자동차로 8시간을 달려 메콩강 상류 메잠폰강에 도착했다. 뗏목을 얼키설키 엮어서 만든 배로 강을 건넌 후 다시 미니트럭을 개조한 마을버스를 타고 흙먼지 길을 한참 달리자 마을 한가운데 번듯하게 자리잡은 개신교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사바나켓주(州) 썽콘군 동사왕 마을에 위치한 라오스 최초의 교회인 썽콘교회다.


주변에 온통 불교사원이 넘쳐나고 사회주의 체제의 핍박도 있었지만, 이곳만큼은 마을 주민 전체가 100년 넘게 오롯이 기독교 신앙을 지켜오고 있다.

특히 이곳 라오스엔 지금 개신교 부흥의 불길이 조용히 지펴지고 있다. 700만 명에 달하는 라오스 인구 중 개신교 신자 비율은 2%가 조금 넘는 16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 전파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공인된 교회와 비공식 가정교회를 합한 교회 수는 700여 곳으로 추정된다. 10년 전 3만 여명이던 것과 비교하면 5배 넘게 성장한 셈이다.

안내를 맡은 K선교사는 “현지인 전도와 종교집회를 엄격히 통제할 뿐만 아니라 공안당국의 감시도 철저하다”고 현지의 상황을 전하며 “위험을 무릅쓴 필리핀 선교사들의 활동이 특히 두드러진다”고 강조했다.

동사왕 마을 쿤미(52) 이장은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현재 우리 마을엔 342가정 2285명이 거주 하는데, 모두 크리스천”이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이곳 마을에선 행정이 모두 자치적으로 이루어지고 초등학교도 마을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다. 마을 어린이 330명이 다니는 학교는 시설이 너무도 열악해 낡은 창고라고 하기에도 무색했다. 양철 천정 지붕은 곳곳이 삭거나 구멍이 뚫려 있었고, 얼기설기 엮어진 벽면에 붙은 칠판 역시 너무 낡아 판서조차 힘들어 보였다. 장난기 많은 어린이들의 잰 발걸음에 교실 바닥엔 금세 흙먼지가 펄펄 날렸다. 동사왕 초등학교 솜판(58) 교장은 “건물이 너무 낡고 협소하다”고 하소연하며 “어린 학생들이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교육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취재에 동행한 왕보현 안수집사(54·남대문교회)는 “믿음생활이 척박할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가난하고 헐벗은 어린이들에게 학교 건축은 하나님이 예비하심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한국교회와 많은 성도들의 관심과 사랑이 이곳에서 펼쳐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초등학교와는 달리 신경제제도 도입 이후 2009년 6월 신축·헌당된 썽콘교회는 비교적 깨끗하고 그 규모도 컸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넓은 마당과 교육관, 집회실 등도 갖췄다. 동시에 300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예배당의 입구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는 말씀이 새겨져 있다.

라오스에 처음 복음을 전파한 사람은 미국 장로교의 다니엘 맥 길버리(Daniel McGilvary)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1872년부터 1898년까지 태국 치앙마이에서 라오스로 여행하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이어 1902년 스위스형제회가 파송한 가브리엘 콘테스(Gabriel Contesse) 선교사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복음의 토착화가 시작됐다. 24살의 청년 선교사가 6년 동안 척박한 땅에서 복음을 전하며 신앙공동체를 이뤘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 교회에서 라오스 사람들이 지금도 예배를 드리고 있다.


콘테스 선교사가 묻힌 교회 앞 공터엔 1926년 라오스어로 구약성경을 완역한 다니엘 오뎃트(Daniel Audetat)와 그의 부인 헬렌 오뎃드(Ms, Helene Audetat) 등 모두 5명의 선교사가 묻혀있다. 현지인들은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들의 무덤을 정성껏 관리하고 있었다.

130년 전 암흑 속의 조선땅을 깨워 변화시킨 파란눈의 선교사들처럼 이곳 라오스에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밀알의 기적을 이뤄낸 믿음의 역사가 존재했다. 오지 속의 오지인 이곳까지 찾아와 낮선 언어와 풍토병, 이방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며 복음의 기적을 이뤄낸 선교사들의 열정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선교사들의 무덤 앞에서 만난 꽁나이(92) 원로목사는 “나는 이제 눈이 어두워 성경 말씀도 읽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잘 안다”면서 “현재 싸이폰 목사 외 교역자 3명이 교회를 잘 섬기고 있으며, 청년부와 여전도회 활동도 활발하다”고 강조했다.

라오스의 크리스천들은 프랑스 식민지배가 끝나고 공산혁명과 이데올로기 싸움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마을 전체가 신앙을 지켜온 그들의 믿음을 통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로마서8:35)”란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가 실현되고 있었다.

썽콘(라오스)=글·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