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숙청
입력 2013-12-16 01:39
숙청(肅淸)은 독재국가 또는 정치단체에서 조직의 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대 정파를 제거한다는 의미다. 숙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지만 권력이 생겨난 고대 국가에서부터 그 전례를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고대 로마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원전 90∼70년경 고대 로마는 혹독한 내전을 겪는다. 전쟁을 통해 인근 국가를 복속하는 등 제국의 위용을 뽐내던 로마제국은 당시 전쟁영웅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또 다른 영웅 루키우스 술라파(派)가 처절한 권력투쟁을 벌인다. 훗날 권력을 장악한 술라는 정적에 대한 숙청에 나서 1만명에 달하는 귀족과 기사들을 처형했다. 영국에서도 1600년대 왕당파와 의회파 간 치열하게 벌어졌던 권력투쟁 이후 대대적인 정적 제거가 뒤따랐다.
20세기 들어 숙청은 전체주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유독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위해서라면 반대세력을 무조건 제거해야 하는 독재 권력의 특성 탓이다. 레닌의 뒤를 이어 소련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은 곧바로 숙청을 시작했다. 라이벌이었던 트로츠키, 지노비예프를 제거한데 이어 자신의 핵심 측근 부하린 등도 숙청했다. 1930년대 숙청된 사람들의 숫자만 수백만명, 강제이주로 인한 추위와 기아로 숨진 숫자까지 더하면 희생자는 수천만명에 달했다.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약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통해 정치적 라이벌 숙청에 나섰다. 10년간 광풍처럼 몰아친 문화대혁명으로 정적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지식인, 학자, 언론인들이 죽음을 당했다.
북한은 세계 숙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집단이다. 김일성 주석은 1950년대 박헌영 이승엽 등 남로당 거물들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고, 최창익 윤공흠 서휘 박창옥 등 연안파와 소련파 간부들도 종파 분자로 몰아 숙청했다. 60년대에는 갑산파의 박금철 이효순 등도 제거했다.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 역시 자신의 후계체제에 도전하는 대상은 친인척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숙청으로 응답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 처형 소식은 북한의 독재권력이 체제 유지를 위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일깨워준다. 북한 권부가 앞으로 또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한반도 안보에 추가로 악영향을 미치진 않을지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