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입 열기 뺨치는 유치원 입학 전쟁
입력 2013-12-16 01:53
이달 초 5세 자녀의 유치원 입학 추첨에 참여했다가 모두 고배를 마신 워킹맘 김모(35)씨는 요즘 틈날 때마다 지원했던 유치원들에 전화를 돌리고 있다. 유치원 등록일을 앞두고 중복 합격한 원생들이 빠진다는 소문이 돌면서 혹시나 빈자리가 나지 않을까해서다. 김씨는 15일 “한 병설유치원에서 대기번호 42번을 받고 내년 유치원 입학을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등록일을 전후해 빈자리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 중”이라며 “나 같은 워킹맘들을 위해서라도 추가합격 정보가 공유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전국 공·사립 유치원들의 신입원생 모집 추첨이 지난주 마무리된 가운데 추가합격을 노리는 탈락 학부모들의 ‘눈치작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일부 공립 유치원이나 대학 부설 유치원, 병설유치원 등 인기 유치원들에서 대기 인원을 선발 인원의 2배 이상 뽑은 만큼 중복 합격자들의 선택이 변수로 떠올랐다. 학부모들은 실제 등록마감일까지 수시로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빈자리가 있는지 확인하거나 다른 학부모들과 정보를 주고받는 등 추첨보다 치열한 정보전을 치르고 있다. 지원한 모든 유치원 추첨에서 떨어졌다는 학부모 이모(37·여)씨는 “유치원 들어가기가 대입보다 힘들다는 말을 실감했다”며 “중복 합격한 학부모를 찾아내 미리 ‘자리 값’을 내고 사려는 극성 학부모들까지 있다”고 귀띔했다.
학부모들은 대입을 방불케 하는 유치원 입학 과열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추첨제도를 꼽는다. 지원 횟수와 권역에 제한이 없다 보니 과열경쟁이 빚어지면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먼 거리를 마다않고 5군데 이상 중복 지원하는 학부모들의 욕심 또한 허수의 경쟁률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은평구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A원장은 “그동안 유치원들은 선착순, 학부모 추천, 추첨제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행해 왔지만 아르바이트까지 동원한 줄서기, 학부모 선택권 제한이라는 부작용을 낳으면서 지난해부터 추첨제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추첨제도는 지원해도 당첨된다는 보장이 없어 학부모들이 불안감에 여러 유치원에 신청 접수하고 이로 인해 허수의 경쟁률만 높아지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중복 당첨자가 다른 유치원에 등록하게 되면 해당 유치원은 원아를 선발해도 추가 모집을 할 수밖에 없어 이중삼중으로 일을 해야 한다. 때문에 내년 3월까지 원아를 받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조춘자 천안사립유치원연합회장은 “집과 가까운 유치원을 선택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부모들의 방문도 쉬워 교사들과 친해지는 길”이라며 “내년에는 권역을 지정해 원서를 받는 등 정부 차원에서 수요에 맞춘 탄력적 정원 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