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세종시 1년] “장·차관 서울, 사무관 세종시, 국·과장은 길바닥에”

입력 2013-12-16 01:44


세종시 공무원은 행복하지 않았다. 국민일보가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7개 부처 공무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는 세종시의 암울했던 1년이 오롯이 들어 있다. 국민일보는 조사의 공정성을 위해 무작위로 100명을 선정해 익명을 보장하는 설문지를 배포하고 회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응답자는 국·과장급 간부 30명과 사무관급 이하 70명이었고, 남녀 비율은 70대 30이었다.

<업무 능률이 이전보다 매우저하 36, 저하 43, 변화 없다 18, 향상 3, 매우향상 0>

‘장·차관은 서울에, 사무관은 세종시에, 국·과장은 길바닥에 있다.’ 정책 조율과 결정이 대부분 서울에서 이뤄지면서 세종시 공무원의 근무지는 이렇게 진화했다. 과장들은 ‘차관(차에서 일하는 관료)’으로 승진했고, 모두들 ‘노마드(nomad·유목민)화’ 됐다. 경제부처 모 과장은 “지난 1년간 세종청사보다 서울 세종로 이순신 동상을 더 자주 봤다”고 말했다. 사무관들은 상부의 생각과 정책방향이 실무자에게 전달되기 어려운 불통을 호소한다. 반면 간부들은 “사무관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줘야 하는데 오랜만에 보니 칭찬만 하게 된다”고 말한다.

<청사시설 중 가장 불편한 점은 약국 등 편의시설 부족 41, 주차시설 협소 34, 사무실 공간 축소 15, 화장실 부족 4, 기타 6>

세종청사는 1동에서 12동까지 모두 연결되는 용 문양이다. 1단계로 완공된 1∼6동은 걸어서 30분정도 걸린다. 그런데 편의시설은 6동 끝에 몰려 있다. 2동에 위치한 공정거래위원회 한 사무관은 몸살기운이 있어 4동 의무실과 6동 약국을 들렀다오니 오전 일과가 끝났다고 한탄했다. 차 없는 명품도시를 표방했지만 현실은 당초 청사 사이사이 상가가 들어설 부지는 임시주차장으로 변했다. 복도가 기형적으로 넓게 설계되면서 사무실 공간은 예전 과천청사보다 좁아졌다.

<세종시 이전 대상 부처 외에 세종시에 내려와야 된다고 생각하는 부처는 안전행정부 89, 기타 11( 여성가족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세종청사 복도에는 걸어서 동과 동 사이를 이동하면 몇 칼로리가 소모되는지를 나타내는 도보이동 권장 표지판이 있다. 그러나 1년 내내 각 동의 1층과 지하층의 계단 출입구는 잠겨 있었다. 안행부가 보안을 이유로 폐쇄를 명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운동 삼아 걸어서 내려갔다가 출입구가 잠겨 다시 걸어 올라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촌극이 계속됐다. 안행부는 지난달 출입구 폐쇄가 소방방재법 위반이라는 언론의 지적이 있은 뒤에야 출입구를 개방했다. 4동 청사어린이집 앞의 무인경비 출입구는 어른 한 명이 들어가기에 빠듯해 아이를 동반한 공무원들이 매일 아침 입구에서 씨름을 해야 한다. 세종청사 한 사무관은 “탁상행정 안행부가 내려와 생활해 보면 하루에 24개씩 보완할 점이 발견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100명 중 가족과 떨어져 홀로 이주 50, 가족동반 이주 39, 출퇴근족 11>

<세종시 이전으로 가정생활이 이전에 비해 불화가 늘었다 38, 별 차이 없다 53, 더 화목해졌다 9>

지난달 세종청사 내 불륜설이 돌면서 주말부부가 된 공무원들은 서울에 있는 배우자들에게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밀린 업무 때문에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지 못하기라도 하면 추궁을 당하기 일쑤다. 2명 중 1명꼴로 가족과 생이별을 하다 보니 가정이 화목해지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1년간의 나 홀로 이주 생활을 청산하고 출퇴근 족으로 변신하려는 공무원도 생기고 있다.

<점심식사 평균 소요시간은 2시간 이상 2, 1시간30분 이상 27, 1시간 이상 37, 1시간 미만 4>

세종시는 미완의 도시다. 지난 정부에서 2년간 공사를 중단했지만 입주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당연히 청사 주변 편의시설은 부족하다. 청사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려면 대전, 공주 등 인근 지역으로 ‘보급투쟁’에 나서야 한다. 식사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업무 시간은 줄어들었다.

세종=이성규 백상진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