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라! “우리를 훔쳐봐”… 프로 경기장 강타하는 女風

입력 2013-12-16 01:33


“니가 먼저 다가가 사랑 한다 말을 해/이제 그래도 돼 니가 먼저 시작해/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뭐가 그렇게 소심해 왜 안 해 여자가/먼저 키스하면 잡혀가는 건가/그애에게 다가가 니가 먼저 키스해/중략/걱정하지 마 하고 싶은 대로 해/난 너의 모든 걸 다 갖고 말겠어”

방송에서 들은 걸그룹 ‘걸스데이’의 ‘여자대통령’이란 노래가사다. 순종이 미덕이던 전통 사회의 도덕률을 한참 벗어나 여성이 먼저 다가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라고 부추기는 내용이다.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시대상황을 절묘하게 끼워 넣고 있다. 사랑뿐 아니라 남성이 주도하던 스포츠 관람에서도 여성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여성은 관람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고대 올림픽을 생각하면 엄청난 파격이다.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는 여성팬들이 이제 무시할 수 없는 고객으로 등장했다. 겨울철 실내스포츠의 꽃인 프로배구와 프로농구 관중도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 단순히 관람문화를 주도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골프처럼 스포츠마케팅에서 여성투어가 남성투어를 압도하는 경우도 있다. 남녀대회가 공존하는 프로 종목에서 여성단체가 남성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

◇여성 관중이 절반인 프로야구=프로야구 초창기에는 가끔 여성을 공짜로 입장시키는 이벤트가 있었다. 미래 고객인 어린이와 여성이 야구장을 찾아야 가족단위의 관중을 흡수할 것이라는 각 구단의 장기적인 마케팅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남성이 대부분이던 야구장에 여성관중이 급증한 것은 5∼6년 전부터다. 주 5일 근무제가 정착하면서 프로야구 관전이 젊은이들 사이에 주말 이벤트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또 거액의 연봉을 받아 젊은 나이에 경제력에다 우월한 신체조건을 갖춘 프로선수들이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도 여성팬 증가에 한몫을 했다. 600만명에 달했던 올해 프로야구 관중의 성별을 알 수 있는 장치는 없지만 각 구단의 회원 정보와 티켓링크의 예매 정보를 종합하면 관중은 남녀가 거의 반반이라는 게 구단 측의 설명이다.

올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 경기 관전을 원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야구표를 구하려는 젊은 남성들의 경쟁이 그 어느 해보다 치열했다고 한다. 야구표를 구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남자들의 능력이 평가됐다는 것이다.

◇프로배구도 여성팬들이 인기몰이=프로야구에 이어 프로배구도 여성들이 흥행의 열쇠를 쥐고 있다. AGB 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 결과 2013∼2014 V리그 남자부의 25∼34세 여성의 평균 시청률이 0.180%(수도권)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같은 기준 올해 프로야구 여성 평균 시청률 0.146%(수도권)에 비해 남자프로배구가 더 많은 여성팬 층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천안에 연고지를 둔 현대캐피탈은 여성 관중 비율이 무려 70%가 된다는 게 구단 관계자의 귀띔이다.

한국배구연맹 관계자는 “최근 3년간 10대부터 30대까지 여성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아 주고 있다”며 “선수들의 경기력뿐만 아니라 준수한 외모도 인기의 요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화재, 현대캐피탈, 대한항공 등 명문 프로배구단의 경우 수년전부터 젊은 여성 관중들이 ‘오빠부대’를 형성하며 배구 인기몰이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남자프로농구도 여성들이 흥행몰이에 앞장서고 있다.

◇여성팬 확보를 위한 구단의 노력=남자 배구단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마케팅활동을 펼치는 현대캐피탈은 수년전부터 여성고객을 겨냥한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해 왔다. 작년에는 천안지역 고교를 찾아 특히 여고생을 상대로 관중유치 노력을 펼쳤다. 심지어 재작년에는 선수들의 세미누드 달력까지 만들어 여성팬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올해는 여성코트 보관소를 홈코트인 유관순체육관에 설치했다.

프로야구장은 연인을 겨냥한 ‘키스타임’을 도입해 볼거리를 제공하는가 하면 어린이 놀이방, 여성휴게실을 설치하는 등 여성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프로야구 두산의 경우 여성에 인기 높은 정수빈이 타석에 등장하면 팝송 ‘서핑 USA’을 개사한 응원가가 울려퍼진다. 이 응원가에는 독특하게 여성과 남성 파트가 나뉘어 있어 잠실구장은 마치 거대한 합창단을 연상케 하는 뭉클함이 있다. 두산은 매달 여성팬들을 위한 ‘퀸스데이(Queen’s Day)’를 만들어 입장권을 할인해주거나 화장품회사와 연계한 다양한 경품행사도 마련했다. LG는 서울 소재 여대를 돌며 야구 이론은 물론 응원법 강의까지 곁들여 큰 호응을 얻었다. 넥센은 목동구장 주변 아파트단지 주부들을 중심으로 한 서포터스를 조직, 여성은 물론 가족단위 관중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2007년부터 ‘스포테인먼트’를 표방한 SK는 가족, 이 함께 야구를 즐길 수 있는 ‘패밀리존’과 바비큐를 즐기는 ‘바비큐존’을 설치했고, 야구장 좌석에 가방 놓기 불편한 여성팬들을 위해 물품 보관함을 설치해 인기를 끌었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