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정기] 아름다운 막말(?)
입력 2013-12-16 01:32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 송구영신의 계절이 오면 스크랩해 연구실 벽에 붙여 놓은 분들과 그들의 얘기를 둘러본다. 몇 분은 집으로 가져와 묵언 대화를 나누고 손질해 다시 귀환케 한다.
올해는 김수영 시인을 맨 먼저 벽에서 뗐다. 그는 1968년 6월 15일 밤 교통사고를 당하고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 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 시를 위해 허무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고궁의 음탕 대신 오십원짜리 국밥에 고기가 적다고 분개하는 것’을 부끄러워한 시인이다. 이 시인을 찾은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아름다운 막말(?), ‘시여, 침을 뱉어라’가 생각나서였다. 1968년 4월 부산 펜클럽 주최로 행한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한 원고 제목이다. 시인은 자유의 이행으로서 힘 있는 새로운 시, 용기 있는 문학을 하지 못하는 점을 지적하며 시를 위해 모인 이들 면전에서 ‘시여, 침을 뱉어라’라는 파격적인 돌직구를 날렸다. 침을 뱉는다는 것은 상대하기 싫다는 경멸, 다시는 어울리지 않겠다는 단호한 이별이다.
돌직구 날린 김수영과 백남준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무지막지한 말은 시에 대한 무한한 애정, 시를 위해 치열하게 함께 노력하자는 것임을. 시의 세상을 위해 모든 앙시앵레짐을 깨자는 절규였다. 그래서 그 말은 살아남아서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백남준 선생도 함께 모시고 왔다.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백남준 특별전을 기획했던 존 핸하르트는 백남준을 자기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고 총명한 천재라고 했다. 백남준은 비디오라는 새 매체로 미술세계의 개념을 바꾸고, 통찰과 유머로 예술의 관습과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전 세계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존경받던 그가 생전 대담에서 예술을 사기라고 하고, 자신은 큰 사기꾼이라고 했다. 엄청난 막말이었다. 그러나 예술이 사기인지, 혹은 그가 사기꾼인지에 관계없이 그 사기론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불쾌함보다는 통쾌함을 던져주는 돌직구였다. 예술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예술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즐거움을 북돋웠다. 난데없는 사기론은 우리를 숙연케도 했다. 황진(黃塵)이 난분분한 이 세상을 사는 우리 각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자문케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에 이런 수준의 막말(?) 소통은 언제나 찾아올까. 국민과 소통하라고 뽑아놓은 정치인들의 소통 리더십을 생각하면 막막하다. 야당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라는 무기로 공안통치와 유신통치를 했지만 자신이 만든 무기로 인해 암살당할 것을 예상치 못했을 것”이라며,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저주의 막말을 한다. 여당 의원들은 ‘국론을 분열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는 답답한 불통의 틀에 갇혀 있다.
정치인들 수준은 막막하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 송구영신 때면 책상 앞에 내거는 시 하나다. 황새, 말, 거북이, 달팽이, 굼벵이, 그리고 움직일 수 없는 바위까지 저마다 방식으로 왔지만 새해 첫날이라는 미래를 향한 출발점에 합류했다. 우리 의원들도 진영논리, 파당, 학연, 지연, 공천, 당권, 비주류, 친박, 친노, 차기 대선 등등으로 복잡하겠지만 국민을 위한 소통에 우선적으로 합류해야 한다.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계층과 이념에 따른 우리 사회의 갈등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포용적인 정치 리더십, 소통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새해에는 국민을 즐겁게도 하고 숙연케도 하는 정치인들의 아름다운 막말을 요청한다.
김정기(한양대 교수·언론정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