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이옥희 인도 선교사] 데칸고원의 작은 꽃송이들
입력 2013-12-16 01:55
광야의 잡초처럼 병들고 짓밟힌 삶…
하나님 사랑에 불평·원망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 넘쳐
지난 9월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주민들이 살고 있는 데칸고원의 시골마을 꼬따빨리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쏟아졌다. 자매결연으로 보살피고 있는 아난과 죠띠를 내년에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지켜본 그들의 삶은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난은 작은 충격에도 전신이 마비되는 희귀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죠띠는 몸의 절반이 마비됐다. 아난은 종일 텅 빈 오두막 귀퉁이에 무심하게 앉아있었고, 이미 몸이 굳을 대로 굳은 죠띠는 대나무로 지은 헛간의 그물침대에 누워 지내곤 했다.
학교 문턱에 가본 적도, 맛있는 것을 먹어본 적도 없고 살가운 친구 한 명 없는 그들은 살아 있으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부끄러웠다. 죠띠는 이제 누구에게도 반응하지 않고 마치 물건처럼 언제나 같은 자리에 누워 있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며 행복해하던 아난의 눈빛도 꺼져가고 있었다. 그들은 사탕과 모자, 크리켓볼에도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그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역시 달리트 주민들이 살고 있는 두브르마을은 내게 특별한 장소다. 몇 년 전, 그 마을에서 의료 캠프를 열어 봉사를 했다. 한 의사가 환자 한 명을 내게 데리고 왔다. 의사는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으니 기도해서 보내라”고 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이 몸을 좌우로 심하게 흔들며 서 있었다. 얼떨결에 그분을 붙잡고 기도를 시작했지만 짧은 기도와 관심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그분의 삶이, 마음의 병이 가슴 깊게 느껴졌다.
기도를 멈추고 그를 돌려보내려던 순간, 마음 밑바닥에서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세상에 태어나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내 딸을 위해 한 순간도 집중할 수 없느냐?”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숨을 멈췄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초점 없는 시선 속에 겁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고, 고통스러운 삶에 직면할 수 없는 듯 그는 떨고 있었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불렀다. “마르다 아주머니,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귀한 딸입니다” “당신은 아름답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깨를 만지면서 등을 문지르면서 살갑게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마르다는 석고상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땀으로 몇 차례 멱을 감고 나니 지쳐서 혀가 감기고 몸을 지탱할 힘이 없었다. 기도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정리하려는 순간 그녀가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분의 미소에 감격하자 새 힘이 솟았다.
더 간절하고 애틋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그러자 내 손에 전해지던 떨림이 잠잠해지고 느려졌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의 가족들도 왔다. 그녀가 다시 나를 보고 활짝 웃었을 때 내 영혼도 기뻐 환호했다. “할렐루야!” 가족과 함께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눈물로 배웅하며 그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같은 날 늦은 오후 다른 마르다 아주머니를 만났다. 의사가 와서 “말기 암 환자인데 진통제 외에는 줄 것이 없으니 기도해서 보내라”고 했다. 오전의 힘든 경험을 다 잊어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를 찾았다. 그는 교회 뒷마당에 누워 있었다. 그녀를 발견한 순간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투병생활로 얼굴 우측 광대뼈의 피부가 뼈와 분리돼 너덜거렸고. 혀에서 자라난 암 덩어리가 혹처럼 늘어져 목에 닿았으며, 아래턱이 다 썩어서 뼈가 다 드러나 있었다.
모진 인간의 목숨과 고통에 대한 연민이 느껴짐과 동시에 얼굴이 그렇게 될 때까지 방치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나를 삼켰다. 숨이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 빨리 그 자리를 모면하고자 서둘러 기도를 끝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쉽게 떠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요청하신 것이다.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악취를 잊어버리고 물수건으로 그분의 손과 발을 정성껏 닦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천국을 준비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울고 또 울었다. “마르다 아주머니, 우리 천국에서 만나요.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니 평안히 가세요”라는 작별인사와 함께 예쁜 수건으로 그분의 얼굴을 덮어드리고 임종기도를 드렸다.
데칸고원의 라열라씨마 지방에서 달리트 마을들을 순회하노라면 잡초처럼 짓밟히고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고통과 고독, 고난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하나님의 작은 꽃송이들인 그들은 내 눈물의 밥이고 감사의 제목이며 에너지원이며 동시에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신비다. 나는 때때로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 “그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가혹하며 부당하다”고 하나님께 따져 묻기도 한다. 달리트마을 순회에서 돌아오면 그들은 내 가슴에 별이 되어 총총히 박힌다. 태어나면서부터 짓밟히고 상처받은 그 작은 꽃송이들을 겸손히 바라본다.
바와니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뇌성마비 환자가 됐다. 꼬일라꾼틀라에 사는 두 자매는 태어나면서부터 뇌 이상으로 성장이 정지됐다. 매튜 목사의 아들 존은 4학년 때 갑자기 식물인간이 됐다. 매리 전도사는 부모님을 어린 시절에 잃었고 현재는 시력과 청력 상실로 고통 중에 있다. 구디미체르부의 한 할머니는 다리가 ‘ㄹ’자로 휘어 평생을 기며 살았다. 비추왈리빨리의 매리네 5남매는 1년 새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돼 흩어졌다. 가야뜨리와 키란은 각기 다섯살과 여섯살에 에이즈로 부모님을 잃었고 자신들도 수직감염돼 에이즈 환자가 됐다. 프리 비앙까도, 수밤마도, 하리뿌리야도 에이즈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저마다 아픔으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에이즈 피해 아동들, 청소년 노동자들, 장애 아동들과 고아들, 학교이탈 청소년과 다우리의 희생자들을 말없이 바라본다.
쏘만디빨레의 마니도 처음에는 광야의 작은 꽃송이처럼 아프고 슬프고 말랐다. 하반신 장애 소녀 마니의 부모는 내게 ‘마니가 주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행과 고통’을 하소연하곤 했다. 그들의 아픔과 절망에 할 말이 없는 나는 애틋한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울었다.
그렇게 3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마니의 몸은 그대로지만 힌두였던 아버지 제이팔과 어머니 아루나는 세례를 받았고 교회의 일꾼이 됐으며 자발적으로 매 주일 식사 준비와 교회 청소를 맡았다. 여동생인 만줄라도 세례를 받았으며 그 남동생 빤넨드라도 믿음을 가지게 됐다. 무엇보다 그 집안에 가득 차 있던 불평과 원망, 분노가 사라졌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넘쳤다. 이제 그들의 집 분위기는 밝게 바뀌었고 매주 금요일마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찬양하며 기도하는 ‘기도처’가 됐다.
우리는 지난 9월의 어느 주일예배 후 동네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그들을 초청했다. 그중 4명의 어린이가 교회에 나올 것을 약속했다. 마니를 통해 일어나는 구원의 역사가 신비롭다. 마니와 그 아이들을 보러 쏘만디빨레에 속히 가고 싶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그분께서 광야의 작은 꽃송이들을 통해 영혼들을 거두실 것이다.
이옥희 인도 선교사
● 이옥희 선교사
-1956년, 전북 이리여고·한신대·한신대 신대원 졸업, 1991년 목사 안수
-기장 총회·전서노회 1997년 파송
-기장 총회 파송 남인도교단 선교사(현)
-비전아시아미션 파송 인도선교사(현)
-인도독립교단 실맛신학교 한국 협력 책임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