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정한 (9) “안되면 되게 하라” 두달간 눈치워 B학점을 A로

입력 2013-12-16 01:35


나에게 특별한 애정을 갖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트리아노 교수가 내게 B학점을 준 일이 대학 3학년 때 일어났다. 나로선 충격이었다. 당시 공부에 몰입해 모든 과목에 최선을 다했고 거의 A학점을 받았다. 유학 초 영어 때문에 절절매던 상황에 비해 놀랍게 발전한 것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열심히 한 결과였다.

나는 이 대학을 마치고 아이비리그(ivy league)에 속한 대학원 한 곳에 들어가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아이비리그란 미국 동부 8개 명문사립대학을 통틀어 부르는 용어다. 브라운, 컬럼비아, 코넬, 다트머스, 하버드, 펜실베이니아, 프린스턴, 예일대학이 이에 속한다. 이 대학들이 모두 담쟁이덩굴(ivy)로 덮인 건물이 많아 붙여졌다. 또 1954년부터 이 대학들이 아이비그룹 협정을 맺어 매년 미식 축구경기를 여는데 이 때문에 아이비리그라고 불리기도 한다. 모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최고 명문대학들이다.

당시 대학 학점에 B가 있으면 아이비리그 대학원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올 A’를 받겠다는 생각에 불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믿었던 트리아노 교수의 한 과목이 B가 된 것이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무조건 트리아노 교수댁에 가서 눈을 치우는 일을 시작했다. 내 숙소와 교수님 집과는 차로 5분 거리여서 눈이 오다가 멎으면 재빨리 삽을 들고 트리아노 교수 댁에 가서 열심히 눈을 치웠다. 미국은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무는 제도가 있다. 또 집 잔디를 안 깎아도 벌금을 내야 하는 주가 많다.

드디어 트리아노 교수가 나를 학교 연구실로 불렀다.“한, 왜 우리 집에 와서 그렇게 친절하게 눈을 치우지? 이젠 그렇게 하지 말도록 해. 내가 충분히 치울 수 있거든.” 나는 바로 이때라 생각하고 나의 속내를 그대로 고백했다.

“제가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터인데, 이 B학점이 있으면 진학하고 싶은 대학원에 못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저의 장래를 위해 학점을 A로 혹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예상은 했지만 트리아노 교수는 아연질색했다. 한마디로 냉정하게 거절하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녀석이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미국 대학에서 ‘인정’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공과 사가 엄격히 구분된다. 나는 평소 트리아노 교수의 모습을 잘 아는 터라 거절을 당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리 섭섭하지 않았다.

나는 1970년대 말, 육군 사병으로 군복무를 했는데 그때 가장 많이 사용했던 군대구호가 바로 “안 되면 되게 하라”였다. 나는 이러한 군 시절 경험과 구호를 미국에 와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끈질기게 눈을 치웠고 트리아노 교수 부인은 나를 볼 때마다 “한, 제발 그만하라!”고 간곡하게 애원을 할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났을 때 트리아노 교수는 다시 자기 연구실로 오라고 나를 불렀다. 그러면서 벽지(Wall Paper)에 대해 A4용지 10장 정도의 리포트를 작성해 오라는 숙제를 갑자기 내주었다.

나는 도서관을 찾아 최선을 다해 리포트를 작성했다. 리포트를 본 트리아노 교수는 “A학점을 줘도 되겠다”며 점수를 변경해 주었다. 한국적 끈기, ‘안 되면 되게 하라’가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눈이 펑펑 내리면 트리아노 교수 집을 찾아 눈을 치우곤 했다. 목적을 이뤘다고 이내 마음을 달리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사실 너무 감사해 순수한 마음으로도 교수님을 돕고 싶었다.

트리아노 교수는 내가 대학원 입학 원서를 넣을 때, ‘추천서’를 정성스레 직접 써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는 내가 아이비리그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원에 입학한 해 가을에 갑자기 암(癌)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때 참 많이 슬퍼했다. 지금도 눈이 오면 트리아노 교수 내외분이 생각난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