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
입력 2013-12-16 01:34
로마서 6장 1∼11절
어느 청교도 설교자가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장 무거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죄책이라는 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한 청년이 물었습니다. “죄책은 몇 파운드나 됩니까. 저는 그 무게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설교자가 답했습니다. “시체가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까. 영적으로 죽은 자는 죄책의 무게를 느끼지 못합니다. 죄책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은혜를 받아 죄 사함의 확신을 갖게 된 사람이 구원의 확신을 지닌 자입니다. 바울은 은혜로 변화 받은 자를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세례를 통해 상징화시켰습니다. 세례는 물에 잠길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나올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다는 바울의 주장을 곡해했습니다. 은혜를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죄를 더 많이 지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왜곡된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용서의 은혜와 더불어 축복으로 부어주시는 은혜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다시 죄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이 불가한 두 가지 이유를 밝힙니다.
첫째,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우리의 관계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죄 속에서 살아가던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 죽음의 표시가 바로 세례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함께 살아났습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죽은 자에게 법의 심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옛사람에게는 율법의 심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새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벗어난 새사람이 심판을 면하지 못할 옛사람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은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자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성찬식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것을 반복적으로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우리의 신분, 가문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런 예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사탄이 경작하는 밭과 하나님께서 경작하는 밭이 있고, 그 사이에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탄의 밭에서 힘겹게 노동하다가 죽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 주셨고 하나님의 밭에서 즐겁게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사탄이 그에게 “이 밭에서 일하던 때가 그립지 않느냐”고 유혹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탄의 밭으로 살짝 넘어갔지만, 그 순간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님을 깨달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는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죄에 대해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윤하 목사 (부천 참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