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실수 한번에… 한맥증권 사실상 파산상태
입력 2013-12-14 02:30 수정 2013-12-14 15:35
파생상품 시장에서 대규모 주문 사고로 584억원에 이르는 결제대금 폭탄을 맞은 한맥투자증권이 사실상 파산 수순을 밟게 됐다. 한국거래소의 긴급 유동성 지원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약간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한맥투자증권이 영업정지나 파산에 이르더라도 투자자들에게는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
한국거래소는 13일 “한맥투자증권이 결제시한인 오후 4시까지 대금 584억원 중 13억4000만원만을 납입해 570억6000만원을 대신 납부했다”고 밝혔다. 거래소 류인욱 청산결제부장은 “주문 실수의 원인 등 사실 관계가 확인되면 증권사들이 출연한 손해배상공동기금 등을 이용해 충당분을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부담을 나눠 진 증권사들이 한맥투자증권에 구상권을 행사하면 한맥투자증권은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다. 한맥투자증권의 자본총액은 지난 9월 말 현재 198억4800만원으로, 지원받은 유동성에 크게 못 미친다.
한맥투자증권은 지난 12일 코스피200 12월물 지수옵션 시장에서 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매수하고 현저히 낮은 가격에서 매도하는 등의 주문 오류로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거래 상대방은 46개사, 체결 주문 건수는 3만6100건으로 집계됐다. 거래소는 이날 오전 “한맥투자증권의 결제불이행이 시장 전체와 투자자에 확산되는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며 매매거래·채무인수 중단 조치를 취했고, 금융감독원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검사 인력을 파견했다.
한맥투자증권은 사고 이후 거래소에 착오거래 구제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날 거래소 중재로 긴급 소집된 증권사 사장단 회의에서도 해법을 찾지 못했다. 한맥투자증권의 실수로 본의 아닌 ‘횡재’를 한 거래 상대방 대부분은 증권사가 아닌 개인·외국인 투자자였기 때문이다. 한 개인 선물투자자는 180억원에 이르는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위탁매매가 아닌 자기매매로 직접 이익을 거둔 한 선물회사는 한맥투자증권에 13억여원을 반환했다.
한맥투자증권은 주문 실수 한 번에 파산에 이른 증권사의 첫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연대 책임’을 지게 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청산금을 배당받더라도 한맥투자증권의 재무상황을 감안하면 회사별로 수억원씩은 손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투자자들이 입을 직접적인 손해는 거의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식과 유가증권은 한국예탁결제원에, 투자자 예탁금은 한국증권금융에 보관돼 있다”고 말했다.
한맥투자증권 임직원 150여명은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금융투자업계에 작별을 알리는 모습이었다. 한맥투자증권은 고객들에게 “타사로 계좌대체이관 또는 청산을 고려해 달라”는 공지를 발송했다. 한맥투자증권 리서치센터는 자산운용업계에 보고서를 보내며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오늘 보내는 자료가 마지막 자료가 될 수 있겠다”고 전했다. 영업본부 직원들은 거래처에 “한맥이라는 이름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마지막 메신저가 될 것 같다”고 인사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