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교사 온라인 연수, 시간 채우기 변질
입력 2013-12-14 01:50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지난달 온라인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개설한 ‘융합인재교육입문과정’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A씨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강의를 틀어 놓고 클릭 몇 번으로 연수시간 15시간을 채웠다. A씨는 이 연수가 끝나자마자 이달엔 또 다른 온라인 연수를 신청했다. A씨가 잇따라 온라인 연수를 신청한 이유는 할당된 연수시간을 보다 빠르게 채우기 위해서다.
A씨는 13일 “90시간의 연수 시간을 채워야 승진이나 교원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며 “지난 여름방학 동안에 60시간을 들어 올해가 가기 전 15시간짜리 2개 프로그램을 서둘러 들었다”고 말했다.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 강화를 위한 교원 직무연수가 평가를 위한 시간 채우기로 변질되고 있다. 대부분 학교에서 연수시간과 교원평가를 연계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선 많게는 90시간, 적게는 60시간을 반드시 채워야 한다. 클릭 몇 번으로 시간만 보내는가 하면 자기 전공과 상관없는 연수를 듣는 경우도 다반사다.
시·도교육청의 학교평가에서도 교원 1인당 연수시간이 중요 평가 항목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연수시간 채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실정이다. 학교평가 등급에 따라 교사 1인당 성과급 차이가 최대 64만원이나 나다 보니 교사들은 학교 등급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수 시간을 채우고 있다. 무슨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는 그 다음 문제다.
교사들이 자주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연수 시간만 축내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자주 올라온다. 커뮤니티 한 회원은 “학생생활지도, 상담, 인성교육 등 해야 할 업무들이 많음에도 헤드폰을 착용하고 온라인 연수를 듣는 교사들의 모습이 오늘날 교무실의 풍경”이라고 말하며 교육행정의 폐단을 꼬집었다. 그는 “손으로 듣는 연수”라며 클릭질만 하다 끝나는 온라인 연수를 강하게 비판했다.
형식적인 이수를 피하기 위해 연수 중간에 온라인 시험을 보기도 하고 각 장마다 80%를 들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됐지만 교사들은 근본적 대책은 아니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좋은교사운동본부 김진우 대표는 “시간으로 평가하는 체제 자체가 문제”라며 “기본적으로 채워야 할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 연수의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