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도로명주소 전면시행] 역사와 문화 서린 ‘마을 스토리’가 사라진다
입력 2013-12-14 01:55
마을에 계성(鷄聲)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살았다. 자상한 아버지이자 착한 남편이었다. 어느 날 계성과 부인이 이름 모를 병에 걸렸다. 며칠 앓다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계성의 아들은 부모의 묘 앞에 움집을 짓고 여러 해 동안 기거하다 명을 달리했다. 아들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아들의 묘 근처에 효자문을 두 개 세웠다. 그래서 이 동네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이 됐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한국은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겼다. 낙향해 있던 ‘충정공’ 민영환 선생은 득달같이 서울로 올라왔다. 선생은 매국노들을 비판하고 어전에 나가 늑약 폐기를 상소했다. 그러나 오히려 일본 헌병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됐다. 그해 11월 “나는 지금 죽지만 혼(魂)은 죽지 아니하여 지하에서나마 조국을 돕고자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선생은 자결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동’은 1946년 충정공 민영환 선생을 기리기 위해 붙인 지명이다. 조선 말 갑신정변 때 일본 공사였던 ‘죽첨진일랑’의 이름을 따서 ‘죽첨정’이라 부르던 것을 ‘충정로’로 고친 것이다.
이렇듯 각 ‘동’에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다. 내년부터 이런 동 이름은 한국인의 생활에서 사라지게 됐다. 도로명주소로 전환되면 쌍문동의 중심 동네는 서울 도봉구 ‘노해로’ ‘해등로’ 등으로,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일대는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로’로 각각 바뀐다. 효자문의 따뜻함도, 충정공의 충심도 주소에서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현 주소체계에서 시·군·구의 하부 행정구역인 동은 행정동과 법정동으로 구분된다. 행정동은 행정 운영의 편의를 위해 설정한 행정구역으로 주민 수의 증감에 따라 수시로 설치·폐지된다. 반면 법정동은 예로부터 전해온 고유 지명을 명칭으로 하며 거의 변동이 없다. 신당1동(행정동)-흥인동(법정동), 원효로2동(행정동)-산천동(법정동) 등이 그렇다. 이 법정동에 그 지역의 유래나 문화가 물씬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안전행정부가 발표한 ‘2013년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 및 인구현황’에 따르면 서울의 법정동은 467곳이다. 도로명주소로 467개 사연 중 상당수가 증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도 치열했던 우리네 역사에서 유래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마을을 지키는 병장들이 진격해오는 청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산을 기어 올라오는 청나라 병사들에게 활을 쏘고 돌을 던졌다. 결국 청군은 마을을 함락하지 못하고 돌아서 남한산성으로 갔다. 이후 오랑캐를 막았다고 해 막을 방(防)에 오랑캐 이(夷)를 써서 방이골이라고 불렸다. 1914년 한학자들이 모여 한자 뜻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고 꽃다울 방(芳), 흰비름 이(荑)자로 고쳐 지금의 방이동이 됐다.
두터운 우정(友情)이 이름에 담긴 동도 있다. 채제민(蔡濟民)이란 서울 젊은이가 평양에서 사업하다 실패해 돌아올 노자마저 없었다. 그가 묵고 있던 집의 주인은 채제민이 자기 딸과 사랑에 빠졌음을 눈치 채고 ‘서울 양반’인 그를 데릴사위로 삼았다. 그러나 결혼 후 채씨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렸다. 장인이 그를 미워해 내쫓으려 할 즈음 후일 명재상이 된 채제공(蔡濟恭)이 평양감사로 부임했다. 사위와 성(姓)이 같은걸 보고 장인은 어떤 관계인지 물었고 채제민은 ‘사촌 형님’이라 거짓말을 했다.
결국 감사를 만나러 간 채제민은 관아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사연을 들은 채제공은 “좋은 동생이 생겼다”며 장인 앞에서 채제민의 기를 살려줬다. 은혜를 잊지 못한 채제민은 채제공이 서울로 돌아올 때 따라왔다. 서울에서 나란히 집을 짓고 윗채는 채제민이, 아랫채는 채제공이 살며 의(義)를 돈독히 했다는 곳이 종로구 ‘돈의동’이다.
서울 은평구 ‘녹번동’은 조선시대 청렴한 조정의 관리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다. 설 추석 등 명절이 다가오면 일부 관리들이 가난한 이들이 가져가도록 나라에서 받은 녹(祿)을 고개에다 슬며시 버려뒀다. 관리가 녹을 버렸다는 뜻에서 ‘녹번이고개’라 불렀고 지금의 녹번동이 됐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역촌(驛村)이었던 말죽거리, 웃방아다리, 아랫방아다리의 세 마을을 합쳐 역삼(驛三)이라 한 데서 붙여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북한산 골짜기 물이 자주 마을로 넘쳤던 서울 강북구 ‘수유(水踰)동’ 등 고유의 지명과 지형 특성을 고스란히 담은 동 이름도 많다.
안행부가 발표한 도로명 주소표기법을 보면 법정동과 아파트 명칭을 주소 뒤에 써도 되고, 안 써도 된다. 의무사항이 아닌 단순 참고용이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58, ○○동 ○○호(서초동, △△아파트)’로 적기보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58, ○○동 ○○호’로만 표기하게 된다는 뜻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도로명에 마을이름·지명·행정구역명이 반영된 경우가 90.8%였다”며 “문화재나 인물까지 포함하면 96%에 달해 도로명이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대다수 반영한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이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로 바뀌지만 ‘서초’라는 지명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도로를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된 서구와 달리 한국은 정체된 공간, 즉 땅을 기준으로 역사가 쌓여 왔다”며 “같은 지명이 들어간다 해도 동과 도로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황 소장은 “도로명주소 사업이 문화적 뿌리까지 뽑아내고 막대한 돈과 행정력을 투입해야 하는 중대한 사업인지 재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최대권 명예교수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이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로 바뀐다”며 “지명에 담긴 뿌리와 이야기를 뽑아내는 도로명주소의 약점을 보완할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