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면 달아오르는 겨울株] 호빵아, 배고픈 지갑도 빵빵하게 해주련?
입력 2013-12-14 01:36
칼 같은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코끝이 알싸해진다. 크게 숨을 내뱉으면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맘때쯤 발길을 붙잡는 건 갓 데운 호빵이다. 입으로 호호 불어 한 입 베어 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부드러운 빵과 달디 단 팥의 조화는 경이로울 정도다. 호빵 하나에 행복한 계절 겨울이다. 바로 이 호빵 덕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호빵회사 직원들과 호빵회사에 투자한 이들. 이들에게 날씨는 추워도 주머니는 따뜻하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가 등락이 결정되는 주식을 두고 ‘계절주’라 부른다. 좁게는 추운 겨울이 되면 호빵 등 따뜻한 음식이,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등 찬 음식이 많이 팔려 계절이 기업 매출과 직결되는 곳들을 말한다. 이들 기업의 주식은 다른 테마주와는 달리 계절에 딱 맞춰 실질적으로 기업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에 투자 안전성도 높다.
실제 주가 상승은 눈에 보이는 수준이다. 지난 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립식품은 6만1300원에 거래됐다. 삼립식품 주가는 이달에만 11.7% 뛰었다. 지난달 4일 삼립식품 주가는 4만6400원이었다. 호빵이 길거리에 보이기 시작했던 11월 초부터 엄청난 상승세를 보여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32.1%나 올랐다.
겨울에 호빵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기업 매출이 늘고, 기업 매출이 증가하면 기업 가치가 오른다. 이러한 기대감이 그대로 주가에 반영되는 식이다. 호빵 외에도 겨울에만 잘나가는 주식은 다양하다. 노스페이스의 두툼한 패딩 점퍼가 날이 추워지면서 불티나게 팔리자 유통업체인 영원무역도 계절 특수를 누렸다. 영원무역의 주가는 지난 10월 17일 3만2100원에서 지난달 29일 4만200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차익을 누리기 위해 주식을 되판 투자자들이 늘면서 3만7000원 수준으로 빠졌지만 아직 높은 편이다.
겨울철 난방으로 인한 가스 수요가 늘면서 한국가스공사의 주가도 오름세를 탔다. 한국가스공사 주가는 지난달 7일 5만4200원으로 마감했지만 지난 11일에는 6만7000원에 거래됐다. 두 달 사이 23.6%나 뛰었다.
IT가 겨울에 빛나는 이유… “누려!!”
겨울과 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겨울만 되면 엄청난 주가 상승을 누리는 곳도 있다. IT주들은 지난 4년간 11∼12월만 되면 엄청난 상승세를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겨울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눈 밝은 투자자들은 겨울을 앞두고 IT주를 대거 매수한다.
IT주들이 날이 추워질 때마다 급상승하는 건 연말 쇼핑시즌 때문이다.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특수’ 등 다양하게 이름 붙어 소비가 늘어날 때 IT제품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여기에 증권사들이 이듬해 증시전망 보고서를 내면서 IT주를 유망 투자처로 항상 포함시키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정훈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저하고 경향을 보이는 미국 경제지표와 연말 쇼핑시즌 기대감을 바탕으로 증권가에서 IT주들이 추천주로 단골 등장한다”며 “이런 계절성을 보인 IT주들은 올 연말에도 상승세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IT주들의 연말 상승세는 엄청나다. 삼성전자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11∼12월에 각각 10.5%, 27.4%, 9.3%, 16.2% 올랐다. 무선통신 부품업체인 파트론은 같은 기간 17.4%, 14.1%, 9.9%, 17.4% 뛰었다. 올해에도 반도체 업체 SK하이닉스는 지난달 11일 3만1500원에서 11일 기준 3만6800원까지 오르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계절주, 대박의 상징일까
계절주라고 무턱대고 투자했다가는 큰 코 다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나마 올겨울에는 삼립식품이 체면치레를 하고 있지만 ‘아이스크림주’는 지난여름 내내 울상을 지어야 했다. 계절주에 대한 경계감이 번지면서 아이스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는 데도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돼지바, 보석바 등 유명 아이스크림 제조사인 롯데푸드의 주가는 지난 4월 30일 88만5000원으로 최고가를 찍었다. 그러나 날이 더워지면서 오히려 주가는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여름의 한가운데인 7월 19일 장중 57만5000원을 기록하며 연중 최저가의 굴욕을 맛봐야 했다. 경쟁업체인 빙그레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빙그레의 주가는 같은 기간 13만7000원에서 10만2000원으로 추락했다. 빙그레는 이후 하락을 거듭하다 지난달 14일부터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올겨울에도 계절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주가가 곤두박질친 종목이 즐비하다. 대다수 의류업체들이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졌다. LG패션은 이달에만 주가가 2% 넘게 떨어졌고, 베이직하우스, 한섬, 쌍방울 모두 1%가 넘는 하락세를 보였다. 이들 업체는 단가가 높은 옷을 팔아 매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주가를 볼 땐 한숨을 쉬어야 했다.
난방용품을 파는 신일산업도 지난 2일 1730원에서 1500원까지 떨어졌고, 겨울철 판매량이 늘어나는 에어워셔 제조사인 위닉스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중요한 건 실적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기업 전체의 실적이다. 한 가지 품목으로 사는 기업이 아니라면 잠깐의 대박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삼립식품 주가 상승의 동력도 호빵 이외에 안정적 수입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삼립식품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삼립, 샤니 등 제빵 부분이 절반을, 나머지 절반을 기능성 식품인 허브텍 등이 채우고 있다. 다른 사업들이 안정세를 찾으면서 삼립식품의 주가는 지난 1월 2일 2만5250원에서 1년 내내 꾸준히 오름세를 보여 6만원대에 안착했다. 호빵 특수를 톡톡히 누리는 것도 단단한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상황에 증권가에서는 계절주에 대한 보고서는 사라지다시피 했다. 예년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업체별 보고서가 쏟아졌지만 최근에는 장기적 안목으로 회사의 성장세를 판단할 뿐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들 스스로 테마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정보 소통 창구가 많아졌다”며 “연구원들도 반짝 상승하는 주식을 추천하기보다는 보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임수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계절적 변수는 투자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가를 출렁이게 할 변수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분명한 실적 증가가 있다면 투자할 만하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지켜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