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화 칼럼] 힘의 진면목
입력 2013-12-14 01:33 수정 2013-12-14 10:18
북한에 파워게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의 보도대로 하면 세칭 북한 권력의 제2인자라 통칭받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비참하게 처형된 것 같다. 그의 휘하에 있던 두 권력자도 공개처형을 당했고, 그 외 숱한 휘하 조직원들의 운명도 풍전등화라고 한다.
심정적으로 파워게임 당사자들의 어느 한 편에 설 수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전쟁이나 스스로의 운명과 직결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일단 약자에게 동정이 생기게 된다. 권력의 세계만 두고 보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파워게임을 보는 시각이 파워가 전혀 없는 사람들, 아니 그들의 파워행사에 늘 차이고 눌리고 밟히고 고통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런 대립과 결투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조소와 분노를 자아낼 뿐이다. 흔히 말하는 백성을 위한 ‘선한’ 권력과 ‘악한’ 권력의 싸움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빈곤과 억압 속에서 아파하는 북녘의 동포들 입장에서는 누구의 편을 들고픈 입장이 아닐 것이리라. 그런 게임의 결과로 일용할 양식과 일용할 자유가 조금이라도 더 주어진다는 확신이 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남녘의 동포 입장에서 보면, 권력투쟁이 패배한 자의 배신이나 패역이 빚은 결과라 하거나 아니면 승리한 자의 전권확보를 가능케 했다고 하더라도 별로 나의 일인 양 관심을 이끌어 내지는 못한다. 다만 이들 북녘 땅의 권력투쟁 결과가 향후 남북 간의 호혜관계에 청신호가 될지 혹은 적신호가 될지가 궁금한 셈이다.
오늘날에는 남한의 민주사회에 살지만, 지나간 어두웠던 시절 온갖 이념과 정치적 술어를 내세워 권력자들의 독선과 독재를 족히 경험하며 저항했던 우리들로서는 권력 내부의 절대권력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진면목을 사건만 들으면 지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물며 북녘의 절대화된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 자기들끼리의 절대권력 확보를 위한 무자비한 투쟁이 어떤 모양으로 디자인되고 홍보되건, 그것이 가난하고 힘없는 다수의 불쌍한 백성들에게 꼴불견 말고 무슨 위로나 위안이 되겠는가 말이다. 혹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하여’ 경쟁하거나 대결하는 권력투쟁은 언제나 볼 수 있을까. 그건 아예 일장춘몽이 아닐까 싶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추모식이 진행된 요하네스버그 소웨토 FNB 경기장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세계 주요 지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그를 사랑하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모여 고인의 뜻을 추모했다.
만델라와 함께한 남아공은 그간 행복했었다. 그가 권자에 있었던 시절이나, 물러나 은퇴한 할아버지로 있었던 바로 며칠 전까지는 말이다. 만델라의 권력투쟁은 350년을 지속한 흑백차별이라는 제도화된 악과의 투쟁이었다. 27년간 유배도 당했다. 국내외의 양심세력과의 연대로 출옥하여 대통령에 올랐던 그는 ‘무지개 국가의 꿈’을 현실화하겠노라 약속했다. 흑백 간의 ‘용서와 화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인들의 과거 죄악을 ‘잊지 않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겠지만, 오늘은 가해자 백인과 피해자 흑인이 밝은 내일에 같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화해’하자고 강조했다.
만델라는 권력투쟁의 쌍방을 끌어안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냈다. 대통령 직에 있던 1997년 짐바브웨 하라라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WCC) 제8차 총회에 와서 기뻐 춤추며 기념축사를 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WCC의 그동안의 헌신에 감사합니다. 흑백이 협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공공의 선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기쁨 중의 기쁨입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는 10여분이 지났는데도 끝이 나지 않았다. 아니 춤까지 동반했다. 노래가 이어졌다.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
성탄과 함께 오는 하늘의 힘은 위에서 군림하고 짓누르는 힘이 아니다. 아래로부터 올라와 사랑으로 섬기는 힘이다. 이 힘의 원천은 십자가의 힘이다. 선으로 악을 이긴 힘이다. 그 힘이 바로 부활의 힘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부활 승리의 힘은 십자가의 용서와 화해와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그 승리자가 곧 우리를 찾아오신다. 성탄에.
(경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