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대학 5학년

입력 2013-12-14 01:40

우리나라에 6-3-3-4 학제가 도입된 것은 1951년. 6년제 중학교가 3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로 분리된 이후 60여년째 유지되고 있다. 노무현정부가 초등학교를 1년 줄이는 대신 고등학교를 1년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으나 이뤄지진 않았다. 그간 학제 변경이 여러 차례 논의됐으나 대학 4년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대학교육을 4년 정도 받고 사회에 나가면 충분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최근 들어 대학을 5년, 즉 10학기 이상 다니는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 전체 졸업생의 34.1%가 5년 이상 다녔다. 5년 전에 비해 10% 포인트가량 증가한 수치다. 인문대는 특히 많아 절반 가까운 49.8%가 5년 이상 다닌 후 졸업했다. 15% 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이다. 서울대 캠퍼스에서 ‘서울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자기 소개하는 학생이 많아진 이유다.

대학 5학년생 급증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대부분 대학에선 학점을 다 땄음에도 졸업하지 않아도 되는 졸업유예제를 시행하고 있다. 어느새 대학이 4년제가 아니라 5년제, 6년제가 돼 버린 것이다. ‘NG(No Graduation)족’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런 현상은 비싼 학비 때문에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취업난이 가장 큰 이유다. 4년 만에 칼 취업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졸업생보다는 졸업예정자가 취업에 유리해서다.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몇 학년인지 물어보는 건 실례란다. 5학년 이상은 대답하기 쑥스러워할 수도 있기 때문이겠다.

대기업들이 이구동성으로 신입사원 채용 때 학벌이나 스펙 대신 잠재력과 끼를 중시한다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취업 준비생은 많지 않다. 인문계 학생들에겐 해외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는 거의 필수다. 어학성적, 인턴십, 자격증, 공모전, 봉사활동은 ‘취업준비 5종 세트’라 불린다. 심층 면접에 대비해 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세상이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힘들어하는 대학생들을 어루만져주겠다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제목의 책을 썼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그런 말로 위로가 되기엔 요즘 대학생들 어깨가 너무 무거워 보인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