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사랑의 비밀

입력 2013-12-14 01:34


남녀 간의 사랑과 배신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 흔히 나오는 말이 있다. 사랑이 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이라고…. 과학적인 지적이다.

사랑에 빠지면 페닐에틸아민, 노레피네프린, 엔돌핀 같은 화학물질들이 왕성하게 분비된다. 페닐에틸아민은 이성으로 제어하기 힘든 열정을 분출시키고, 노레피네프린은 상대방의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을 쿵덕거리게 해준다. 엔돌핀은 즐거움과 행복감에 도취하게 만든다. 이 같은 화학물질 덕분에 사랑에 빠지면 가슴이 뛰고 연인 생각에 잠을 못 이루며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이 같은 화학물질들은 점차 분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항생제를 많이 쓸수록 병원체에 대한 인체의 저항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상대방을 봐도 대뇌에 항체가 생겨 더 이상 사랑의 화학물질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랑은 그대로인데 화학물질의 장난으로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부작용과 중독성이 없는 진짜 사랑의 묘약 같은 화학물질이 있다. 이 화학물질은 불같은 사랑이 지난 후 끈끈한 정으로 맺어지는 애착 단계가 되어서야 분비되는 특성을 지닌다. ‘신뢰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친자 확인 검사법의 등장 이후 부부금실이 좋기로 유명한 새들도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원앙의 경우 암컷이 낳는 새끼 가운데 약 40%가 다른 수컷의 새끼로 밝혀졌으며, 일부일처의 상징이던 고니는 평균적으로 새끼 6마리 중 1마리가 역시 다른 아비의 자식이었던 것.

하지만 초원들쥐는 평생 순정을 지키며 산다. 초원들쥐의 수컷들은 첫 짝짓기 상대와 평생 짝짓기를 하며 일단 짝을 만난 이후에는 다른 암컷이 접근할 경우 공격까지 하는 특이한 행동을 보인다. 때문에 초원들쥐는 동물의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관심을 오랫동안 끌어왔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연구진이 초원들쥐에 대한 새로운 비밀을 밝혀냈다. 초원들쥐의 순정 역시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라는 호르몬 덕분이지만, 후성학적 변화로 그런 화학물질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즉 초원들쥐들이 순정을 지키는 것은 타고난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부부로 살면서 일어난 후천적인 변화 덕분이라는 의미다. 과학은, 사람이 변해서 사랑이 깨지기도 하지만 사랑이 사람을 순정남녀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