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미디어비평] TV 프로그램 '대박'의 조건

입력 2013-12-13 15:24

[친절한 쿡기자]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이 대박나는 비결은 무엇일까.

PD와 작가의 도발적 창의력이 넘치는 새로운 포맷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 오랫동안 물려받은 ‘족보’인 고정포맷에 한번 갇히면 여간해서 그 묵은 틀을 헤어나기 어렵다. 요즘같이 종편에다 케이블 약진의 프로그램 홍수시대에서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방송까지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번 끌어보는 자체가 그리 쉬운 일만도 아닌 환경에선 더욱 더 그렇다.

요즘 잘나가는 이른바 대박프로그램들을 보자. 대부분 도발적 창의력이 돋보이는 새로운 포맷을 만들고 있다.

먼저 케이블 tvN은 두개의 간판프로그램으로 방송사의 주가를 상한가로 끌어올리고 있다. ‘응답하라 1994’는 황금시간대인 주말 저녁 8~9시대의 공격적 편성에서 이미 지상파를 제치고 10% 안팎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주말이라고 토·일이 아니라 지상파드라마가 없는 금요일에 시작해 토요일까지 이틀 연속 공략하는 편성전략도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대박난 ‘꽃보다 할배’의 후속편인 ‘꽃보다 누나’ 역시 2회 방송에서 이미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응사에 뒤이어 방송하는 연속편성으로 꽃누나의 프레미엄을 더욱 높여놓았다.

14회까지 보면 응사는 ‘케이블 시청률은 결코 지상파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해묵은 관념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그러니 지상파 드라마나 예능제작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하며 tvN의 두 간판 프로를 눈여겨 보고 있다. 무엇이 기존 방송드라마 판을 뒤바꾸고 있을까.

우선 응사를 보자. 신촌집 하숙생들의 이야기는 대본만 보았을 때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다. 다른 누구든 평범하고 다소 지루한 포맷의 드라마로 묻혀질 뻔한 진부한 스토리다.

뻔한 다 아는 옛날 이야기로 치부될 수도 있던 응사에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생명의 혼을 불어넣었다. 특히 이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드라마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모두 챙겼다. 장면마다 노출되는 디테일은 94학번 이후 세대에는 추억과 향수를, 94학번 이전 젊은 세대에는 호기심과 동경을 잔뜩 되살려놓았다.

20년이나 흐른 지금 나이든 세대는 ‘그땐 저랬었지’라면 자신의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고 대학생 과 청소년 등 고달픈 젊은 세대는 ‘차라리 저 때가 좋았겠다‘는 자조속에 지금은 사라진 낯선 풍경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놓았다. 이러한 치밀한 디테일은 마치 20년전 기록영화를 되돌려보는 듯 볼거리를 구성해서 시청자의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 하나 빼놓을수 없는 것이 드라마에 예능을 살린 장르믹스다. 매회 장면마다 시청자의 집중력을 높여주며 지루함을 잠시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KBS의 해피투게더에서 대박을 낸 신원호 이우정 콤비가 빚어내는 예능의 끼가 응사 곳곳에 배어있다. 드라마에서 예능이 빠지면 대박을 터뜨리기 어렵다는 속설대로 응사는 드라마적 요소와 예능의 포맷을 믹스한 이른바 ‘예드’의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 .

‘꽃보다 누나’도 그렇다. KBS2의 ‘1박2일’을 주말 예능프로그램 중 랭킹 톱에 올려놓은 나영석 PD의 끼가 꽃보다 시리즈에서 가감없이 흘러넘친다. 창의적 발상과 실험을 하되 PD나 작가의 작위성을 배제하는 리얼버라이어티 연출감이 단연 돋보인다. 그런 탓에 ‘꽃보다 누나’ 역시 ‘꽃보다 할배’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제작진은 자칫 식상하기 쉬운 배우들의 여행기에 그쳤을 꽃보다 시리즈를 새로운 포맷으로 재탄생시켰다. 짐꾼이란 개념도 그렇고, 화면속에서 정형화된 배우들의 페르소나를 완전히 뒤엎은 연출이 대박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이순재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야동순재’라는 다소 인간적인 별칭이 붙긴 했지만 시청자들의 눈엔 지적 토대와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원로배우의 완고하고 강한 이미지가 남아있었다. 꽃할배는 그러한 배우들의 앞 모습을 넘어서 인간 이순재라는 뒷모습을 훤히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지상파 케이블 할 것 없이 모든 방송사에서 리얼버라이어티가 대세다. 매일 방송사마다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봇물같이 쏟아져 나온다. 카메라가 부부의 침실에서 명사의 친인척까지 현미경 들여다 보듯하다 보니 관음의 시대가 아닌가 착각마저 들 정도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이제 PD의 작위성이 개입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의 남들의 민낯을 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다보니 때도 시도 없이 주말만 되면 시청자들은 탤런트 등 명사들의 사적 공간을 서슴없이 들락거린다. 먹방이 대세를 이루더니 이젠 독신과 육아, 가정 등 극히 프라이버시 공간에 카메라를 넣어 사생활 공간을 훔쳐보게 만든다. 탤런트나 배우의 부부는 물론 그의 아들딸, 시부모, 처가, 그것도 모자라 사돈네 팔촌까지 다 얼굴을 내디민다.

이제 주말만 되면 시청자들은 피로하다. ‘내가 왜 이런 것을 봐야하나‘는 회의감마저 들게 하는 난삽한 프로그램도 한둘이 아니다. 이는 도전적 창의성이나 실험정신이 아니라 저비용으로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런대로 시청률이 나온다는 안이함의 결과다.

요즘 드라마나 예능프로램들을 보면 창의적 발상이나 디테일이 없이 그저 남의 것 베끼는데 열중하다 보니 짝퉁 프로그램들이 너무 남발한다. 진품이 아닌, PD나 작가의 영혼이 배어있지 않은 짝통에 그친다면 그것은 전파의 낭비요 시청자들을 지치게 할 뿐이다. 나아가 짝퉁은 진품을 만든 PD와 작가에 무임승차하는 저작권 침해이자 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다.

지금 대박내는 PD들과 작가들은은 창의성과 실험정신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고민하고 또 번민해왔다. 또 방송사 내부 조직문화도 변해야한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창의적 발상’을 하기도 어렵지만 한다 한들 받아주지 않는 방송사 내부의 조직문화는 이내 좌절감만 남길 뿐이다. 실례로 ‘나가수’ 첫 출연한 MBC의 김영희 피디가 처음 화면자막을 넣었다가 ‘어지럽다. 빼지 못하느냐’는 윗사람들의 닥달에 3개월이나 쫓겨다녔다는 일화가 그러한 관행을 짐작케 한다.

PD와 작가들은 방송사에서 창의적 발상과 실험을 하는 주체다. 그들이 기존의 관행과 위계적 질서에 순치되는 순간 결코 대박프로그램은 나오지 않는다. 도전과 실험 정신이 빠진 제작진이 과연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그런 점에서 KBS의 개그콘서트와 MBC의 무한도전은 그러한 창의력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무도가 이제 늙은 것 아니냐는 힐난을 딛고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을 보는 듯 새로운 포맷을 개발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개그콘서트 역시 새로움을 향한 창조적 파괴를 계속하고 있다. 시청자들조차도 아쉬워할 때 인기아이템을 미련없이 버리고 새로운 아이템 개발을 시도한다. 그것이 선의의 경쟁과 도전과 실험정신을 고양시켜 매회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대박나는 프로그램은 다르다. 역시 사람이다. PD와 작가의 창의적이고 도발적인 도전과 실험, 이를 보장해주는 방송사의 열린 내부구조가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다. PD와 작가를 무조건 닦달한다고 좋은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본을 앞세워 그들의 헝그리정신을 흐트러놓는 순간 그 작품도 망가진다.

오로지 아티스트로서 그들을 존중하고 작가정신과 장인정신을 발휘하도록 할 때 새로운 포맷의 대박프로그램이 탄생한다. 그들이 결코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 끊임없이 포맷 변화를 시도하며 밤낮으로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을 내놓을 때 시청자들은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김경호 논설위원 겸 방송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