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벼락치기

입력 2013-12-13 01:37


주초에 벼락치기로 김장을 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마당에 독을 파묻고 동치미까지 담가 먹었는데, 번거롭기도 하고 사먹는 김치도 먹을 만해서 김장독을 비워둔 지 한 7∼8년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어머니 스스로 당신 손맛이 그리워지셨는지 지난달부터 김장 노래를 부르시더니 언니와 나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을 벌이셨다.

지난 주말, 나갔다 돌아오니 마당 한쪽에 절인 배추들이 버티고 앉아 있었다. 천천히 하시겠다던 어머니는 감기로 며칠이 지나도록 시작도 못하셨고 결국 동사 직전의 배추를 더는 외면할 수 없어 다 저녁때 언니와 함께 거사를 도모했다. 쪽파, 대파, 청갓을 다듬고 무, 배, 사과를 채 썰고, 고춧가루와 간 마늘, 갈치액젓을 넣고 기억을 더듬어 만들려는데 뭔가 빠진 듯했다. 설탕과 소금! 마침 인터넷에서 본 것이 생각나 설탕 대신 사과와 배를 갈아 넣기로 했고 웰빙 김치라며 양파까지 갈아 넣었다. 차곡차곡 통에 담긴 김치를 보니 휘뚜루마뚜루 해치운 것치곤 꽤 그럴듯해 보였다. 그런데, 안심하고 마무리하려는 순간 결정적인 부실이 드러났다. 생강을 빼먹은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치맛 변한다. 소금물에 생강을 타서 부어라.” 결국 요리 좀 한다는 자신감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치른 첫 김장은 그렇게 생강물에 침몰하고 말았다. 다음날, 생강물 김치의 앞날을 걱정하며 재료비 생각에 속 쓰려하는데 TV에서 여의도발 벼락치기 소식이 들려왔다. 정기국회 99일간 한결같은 자세로 삿대질에 고함만 쳐대더니 마지막 날 37건을 무더기 통과. 여야가 작당한 듯 딱 95분 동안 일하는 시늉만 하고는 임시국회 시작하자마자 또 싸운다. 대체 나머지 안건 6320개는 언제 할 건지, 또 벼락치기로 해치울 건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추위에 쫓겨 날림으로 담근 김장은 겨울 한철 우리 식구만 괴로우면 되지만 수백조원이 걸린 나랏일은 잘못되면 그 화를 국민이 고스란히 받는다. 그 책임은 누가 지나? 무책임하게 초치기하라고 준 금배지가 아니다. 오죽하면 국회 관련 기사 최다 추천댓글이 ‘국회해산’일까.

변해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민생을 외면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세비를 몰수하든 징계를 하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일하지 않는 머슴은 필요 없다. 그게 국민의 상식이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