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머뭇거리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
입력 2013-12-13 01:37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과 관련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만큼 흥행 요소를 모두 갖춘 사건도 드물다. 혼외아들 의혹이라는 아침 드라마적 요소에 청와대 행정관과 국가정보원에 근무했던 구청 공무원, 안전행정부 국장급 인사까지 등장했다. 행정관과 구청 공무원, 안행부 국장은 각기 서로 다른 얘기를 하며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잊혀져 가던 ‘진짜 혼외아들인가’라는 진실 규명 움직임도 진행 중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아직 주연은 등장하지도 않았다는 설이 파다하다. 청와대 행정관이 조연이라면 도대체 주연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일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6개월 전 구청 공무원이 가족관계등록부를 잠깐 들여다본 일이 이토록 흥미진진한 드라마의 시작일 줄은 들여다본 공무원도, 부탁한 청와대 행정관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관전자들은 흥미롭지만 검찰은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모든 궁금증과 의혹을 속 시원히 풀어야 할 책임을 떠맡았다. 문제는 드라마 결론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는 점이다. 검찰 수사는 진행 중인데 사람들은 결론을 이미 짐작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몇 년간 일부 정치적 사건 처리 결과를 지켜봤던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는 그럴 듯한 시나리오들도 여러 개 나돌고 있다. 수사 결과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부실 수사라는 융단폭격이 가해질 게 뻔하다. 특검은 다음 수순일 것이고, 새로 취임한 김진태 검찰총장도 시작부터 스텝이 꼬이게 된다. 요즘 검찰 관계자들은 기자에게 “언론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언론이 너무 많은 의혹과 추정을 제기한다는 불만이 담겨 있다.
처음 수사가 시작됐을 때 검찰 안팎에서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수사는 아니다’라는 전망이 많았다. 가족관계등록부를 불법으로 들여다본 사람과 이를 지시 혹은 부탁한 사람을 찾아내는 수사다. 6년 전인 2007년 7월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그해 7월 6일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가족의 주민등록초본 등 개인자료 유출과 관련한 고소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했다. 검찰은 사건 배당 8일 만에 주민등록초본을 부정하게 발급받은 혐의로 전직 경찰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틀 뒤인 16일에는 전직 경찰관으로부터 주민등록초본을 넘겨받은 혐의로 박근혜 후보 캠프 인사를 체포했다. 수사 시작 10여일 만에 정보 유출의 얼개가 파악된 셈이다.
6년 전 사건과 현재 사건을 단순 비교하긴 힘들다. 현재 사건을 맡고 있는 형사부가 특수부보다 수사 노하우가 떨어진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있는 수사팀의 열정은 이를 지켜본 취재 기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검찰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는 ‘담당 수사팀이 과로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얘기마저 나돌았다.
결국 부족했던 것은 검찰 수뇌부의 의지였다. ‘수사가 잘 진행되고 있으니 지켜봐 달라’는 소극적인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특히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주연’이 등장하지 않고 드라마가 끝난다면 성난 관전자들을 무엇으로 설득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검찰 수뇌부가 사건 초기 ‘성역 없이 신속히 수사하겠다’며 강한 입장을 표명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불필요한 오해는 없었을지 모른다. 아쉬운 지점이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