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가 읽은 세계문학’ 문학동네 카페에 2년 간 연재된 세계문학 서평
입력 2013-12-13 01:33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이 110권을 돌파한 가운데 지난 2년간 네이버 카페에 연재됐던 ‘한국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문학동네)이 책으로 묶였다.
“언젠가 그가 내게 ‘이야깃거리가 많은 나라에서 태어난 당신이 부럽다’고 말했고 나는 그에게 ‘당신의 자유가 부럽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바로 이러한 대화는 일본에서 오에 겐자부로와 만났을 때에도 비슷하게 나눴던 대화였다. 우리네 같은 이른바 제3세계적 조건의 사회에서는 ‘이야깃거리’란 무수한 억압과 고통의 산물이기가 십상이고 저러한 말이 내심으로는 ‘빈정거림’으로 들리기 쉬운 때문이다.”(황석영,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
서평을 쓴 이는 모두 102명. 황석영 성석제 김영하 김연수 박민규 김애란 등 국내 문단의 대표작가에서부터 평론가 서영채 황종연, 싱어송라이터 루시드 폴까지 다양한 필자가 참여했다.
글의 형식 또한 작가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한데, 각 필자가 어떤 작품을 골랐는지를 살펴보는 재미도 남다르다. 소설가 백영옥은 고전 중의 고전인 ‘안나 카레니나’를, 이혜경은 ‘위대한 개츠비’를, 편혜영은 ‘피아노 치는 여자’를, 박민규는 ‘톰 소여의 모험’을, 루시드 폴은 ‘부활’을 각각 골랐다.
“톨스토이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고향 아스나야 폴랴나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러시아의 화학자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프로쿠딘-고르스키가 찍은 그의 유일한 컬러사진이다. 그때의 촬영 기법으로는 세 개의 각기 다른 색 필터를 통과한 이미지를 겹쳐 하나의 사진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세 번 연속 촬영하는 동안 피사체를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사진을 보다가 문득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빛이 떠올랐다”(루시드 폴, ‘톨스토이의 부활’)
또 시인 가운데는 허수경 송재학 이병률 김민정 강정 이문재 문태준 권혁웅 등도 참여했는데 소설가와는 다른 독법으로 세계 명작을 읽는 그들만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그랬네. 한트케의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속의 주인공처럼 곧 서른이 되는 즈음에 나는 떠나왔네. 나에게는 이런 편지를 보내왔던 아내는 없었지만.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서울을 떠나오던 1992년 늦가을, 나는 광화문 근처에 있는 작은 방에 있던 가구와 책과 편지와 사진들을 정리했다. 어수선한 그 방 안에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짐 싸는 것을 멈추었다.”(허수경,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