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이지 않는 주름들을 살펴온 따스한 시선… 함순례 두 번째 시집 ‘혹시나’

입력 2013-12-13 01:33


함순례(47·사진)에게는 “후배 시인들을 아우르는 늠름함이랄까, 한 살만 어려도 확신하게 아우를 삼는 형님 포스”가 있다고 한다. 시종일관 너그럽게 주변의 모든 것을 품고 쓰다듬는 ‘대모 같은 품성과 시선’이 그것. 그의 두 번째 시집 ‘혹시나’(도서출판 삶창)는 가진 자들의 횡포에 눌려 살고 있는 낮은 자들의 생에 착착 감긴 보이지 않는 주름들을 포착해낸다.

“서로가 서로의 바람막이가 되어/ 견딘다는 거/ 위험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시베리아 사람들처럼/ 바짝 어깨를 겯고 온기를 나눈다는 거/ 우리가 그랬다/ 사대상 사업으로 뒤틀린 금강 자락/ 차고 높은 나포길에서/ 우리 사이좋게/ 장딴지에 힘주고 칼바람 밀고 나갔다”(‘금강하구연, 차고 높은-금강 2’ 부분)

함순례는 곳곳을 순례하며 묵묵히 그곳, 그곳 사람들의 아픈 목소리를 받아 적는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나포길, 사라진 통장에 놀라는 노모, 사춘기 아들 녀석, 심야버스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포근히 감싸는 따스한 이불과도 같다. 그런데 이불인가 했더니 따스한 밥이기도 다. “네가 차려준 밥상이 아직도 기억에 있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너의 집 앞에 지나다 받았던, / 첫 애기 입덧 내내 네가 비벼준 열무비빔밥 간절했어/ 네 자취방의 아침밥도 잊을 수 없어/ 내가 차렸다는 어린 날의 밥상들이/ 이십 년 만에 나간 동창회 자리에 그들먹하니 차려진다”(‘밥 한번 먹자’ 부분)

20년 만에 만난 동창들은 한결같이 함순례가 학창시절에 자취방에서 차려준 밥상을 잊지 못한다고 한 마디씩을 건넨다. 배고픈 친구들에게 밥 한 끼는 그냥 밥이 아니라 영육을 살찌우는 양식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외로우니까 밥을 먹었고 분노와 절망이 바닥을 칠 때도 배가 고팠던 시절이 아니던가. 뿐만 아니다. 슬픔에 빠진 친구를 한없이 기다려주고 열병에 앓는 아들에게 콩나물 황태국 한 그릇 끓여 먹이는 일은 삶의 보이지 않는 주름들을 두루 살펴온 시간일 것이다. 그의 시에서는 그래서 대모의 품격이 묻어난다.

“혹시나, 는 둥근 그늘이며 내 생의 환(幻)이다”(‘시인의 말’)이라고 고백하듯 ‘혹시나’는 시집 제목이면서도 동시에 그가 차려놓은 ‘둥근 그늘의 밥상’이다. 누구라도 받아보고 싶지 않겠는가. 비겁해 질 때 고봉밥을 퍼주던, 휘청거릴 때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던 함순례의 넉넉한 손길로 차려준 한 끼 밥상을.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