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숙청 이후] 공개장소에서 경쟁자 축출… 김정은은 ‘할아버지 스타일’

입력 2013-12-13 03:34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숙청 등 1인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때의 통치 모델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전체회의라는 공식 회의기구를 열고 장 부위원장을 숙청했다. 또 전체회의에선 장 부위원장의 죄목을 상세히 열거했다. 이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1997년 ‘심화조 사건’을 일으켜 무려 3만여명을 숙청하는 피바람을 일으켰지만 군부를 통해 비밀리에 실시했고, 대외에도 전혀 발표하지 않았다.

반면 김 주석은 당 공식 기구를 통해 경쟁자들을 축출했다. 김 주석 집권 시기 대표적 숙청 사건이었던 1956년 ‘8월 종파사건’에서 김 주석은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고 반대파들을 출당·제명시켰다. 통일부 당국자는 12일 “장 부위원장 숙청과 같은 방법은 김정일 시대에는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제1위원장은 현재 당을 앞세운 전통적인 사회주의 체제로의 복귀를 꾀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핵심 정책인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도 지난 3월 당 중앙위 전원회의라는 공식 기구를 통해 확정했다. 김 위원장은 군을 중심으로 한 ‘선군(先軍)정치’를 했지만 김 주석은 당 중심 체제를 선호했다.

김 제1위원장이 김 주석의 롤 모델을 따르는 것은 집권 당시의 나이와 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으로 정부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20대 후반 젊은 나이에 정권을 잡았다. 또 ‘선군정치’로 인해 막강한 힘을 가진 군부와 후견인이었던 장 부위원장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김 주석도 30대 초반 북한 최고지도자에 올랐지만 남로당, 연안파, 소련파 등 반대세력의 견제에 시달렸다. 반면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 주석의 권력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1980년 제6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공식적인 후계자가 된 이후 14년간 착실히 권력 기반을 쌓아 왔다.

한편 망명설이 떠돌았던 노두철 내각 부총리는 이달 초까지 북한에서 정상적인 대외 활동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일 노 부총리가 박봉주 내각 총리,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기남 선전선동부장 등과 함께 건설부문 일군(일꾼) 대강습 참가자들의 숙소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이 행사는 장 부위원장의 출당을 결정한 당 정치국 확대회의 하루 전에 열렸다. 김 제1위원장 신임이 두터운 최 총정치국장 등과 함께 방문했다는 점에서 노 부총리의 신변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통일부는 파악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