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임영철 ‘밀당’에 쑥쑥 크는 젊은 우생순

입력 2013-12-13 02:29 수정 2013-12-13 14:58


“반찬이 이게 뭐야!” 밥을 먹다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선수들은 움찔한다. 반찬엔 아무 문제가 없다. 선수들은 알고 있다. 감독의 반찬 투정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조별 예선을 치르고 있는 임영철(53·사진) 감독은 매일 선수들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하고 있다.

한국이 몬테네그로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패한 다음날인 8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훈련 분위기는 살벌했다. 네덜란드와의 2차전을 앞두고 임 감독은 선수들을 심하게 다그쳤다. 화를 내며 고함치는 소리가 훈련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정신을 번쩍 차린 선수들은 네덜란드를 29대 26으로 꺾고 첫 승을 따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던 중 임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았어? (승리를) 즐겨. 즐기라구!” 임 감독은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10일에는 콩고에 34대 20으로 이겼지만 전반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방심한 탓에 약체인 콩고를 상대로 경기 주도권을 틀어쥐지 못했다. 선수들은 불호령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임 감독은 선수들에게 “아직 중요한 경기가 많이 남았으니까 마음 다잡자”고 타일렀다. 다음날 경기 초반부터 도미니카공화국을 압도하며 51대 20 대승을 거뒀다. 3연승을 거둔 한국은 3승1패(골 득실 +46)로 몬테네그로(3승1패·골 득실 +41)를 제치고 조 2위로 올라섰다.

임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유독 심하게 선수들을 다그치고 있다. 이유가 있다. 대표팀 17명 중 무려 11명이 1990년대생이다. 평균 연령은 24.4세밖에 안 된다. 세대교체를 단행한 탓이다. 물론 대표팀엔 송미영(38·인천시체육회), 우선희(35·삼척시청) 등 베테랑들이 있다. 하지만 향후 주전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이다. 이들을 ‘막강 우생순’으로 조련하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최고참 송미영은 “나도 어려서부터 임 감독님께 꿀밤을 맞으면서 핸드볼을 배웠다”며 “임 감독님은 훈련 땐 호랑이처럼 무섭지만 평소엔 자상한 아버지 같은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은 호통에 눈물을 쏙 빼면서도 존경하고 따른다”고 말했다. 송미영은 임 감독을 ‘호랑이 같다’고 했지만 알고 보면 여우를 닮았다. 용의주도한 임 감독은 선수들에게 화를 내거나 농담을 할 때 즉흥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하는 게 보인다.

베오그라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