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외국계 금융사 “한국 증시 장밋빛”… ‘묻지마 전망’ 믿지마

입력 2013-12-13 01:30


반복되는 립서비스… 속내는

“2014년 한국 증시는 아시아 지역의 다른 시장들보다 선방하며 견조한 상승 흐름을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기업의 이익 성장률이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합니다.”(피델리티자산운용 마이클 리드 대표)

“글로벌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한국, 중국, 대만 등 수출 중심 제조업 국가들에 대한 투자가 글로벌 평균 대비 초과수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슈로더자산운용 키이스 웨이드 수석이코노미스트)

◇한술 더 뜨는 외국계=세모(歲暮)가 되자 올해도 변함없이 외국계 증권·자산운용사들의 국내 증시 칭찬은 되풀이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 회복세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가 더욱 자주 한국 시장을 노크할 것이며, 국내 증시는 내년에도 튼튼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경제전망 리포트에서는 “거품론이 나오는 미국 증시에 비해 오히려 한국 증시가 견조하다” “아직도 주도 종목들의 가격이 낮게 형성돼 있다”는 진단들이 잇따른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장밋빛 전망을 비판받는 국내 금융투자업계보다 한술 더 뜨기도 한다.

12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라자드자산운용의 닉 브랫 매니징디렉터는 “엔화 약세가 일본으로부터 핵심 부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에는 도움이 된다”며 “일본 경제의 빠른 회복은 한국 등 주변국들에 긍정적 요인”이라고 최근 분석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국내 기계·자동차 기업들은 각종 투자설명서에서 아베노믹스에 따른 공급량·영업이익 감소를 호소하고 있다. “엔저 현상은 우리에게 복병”이라고 언급한 회사도 있다.

금융시장 초미의 관심사인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이슈에 대해서도 “한국은 다를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미국 자산운용사인 지아 파트너스의 햄버그 탱 매니징 디렉터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나 자본 흐름이 양호하다”며 “연준의 테이퍼링 등의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고 최근 전망했다. 한국 경제는 기초 체력이 튼튼하고 채권 발행이 적절하게 통제되고 있어 긍정적이라는 분석이었다.

◇정작 외국인 투자자는 내던진다=국내 전문가들은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칭찬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외국인 투자자의 동향을 살펴보면 분위기 파악이 가능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최근 3개월간 7조2000억원 이상을 사들였지만, 테이퍼링이 임박한 최근 1개월간은 9200억원가량 내던졌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외국인 투자자가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순매수 행진을 기록한 것만 부각할 뿐, 그 이후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최근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있고, 한국 증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지난 6월의 ‘삼성전자 셀 리포트’ 사건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7일 6.18% 하락하며 그날만 시가총액 14조원을 날렸다. 연속해서 급락한 삼성전자의 주가는 7월에 120만원대까지 빠졌다. 삼성전자와 금융투자업계가 분석한 원인은 JP모건의 매도보고서 한 장이었다. JP모건은 “갤럭시S4의 판매량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210만원에서 19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약속한 듯 매도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정말로 약속된 플레이인지도 모른다. 삼성전자가 급락하자 시장에서는 “헤지펀드 등 외국인 투자자들이 JP모건과 손발을 맞춰 공매도를 준비했다”는 음모론이 퍼졌다. 이상급락 당시 삼성전자의 대차잔고(주식을 빌린 뒤 갚지 않은 물량)가 급증했다는 것이 근거로 언급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삼성전자 급락 직전 코스피200지수 선물을 대규모로 팔아치운 것도 음모론을 키웠다.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코스피지수의 하락을 예측하고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었느냐는 의구심이다.

◇립서비스는 새겨들어야=한성대 엄윤성 경영학부 교수는 이를 논문으로 입증한 바 있다. 외국계 금융회사가 투자의견을 하향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기 직전 외국인의 공매도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났다는 연구 결과였다. 또 외국계 금융회사의 투자의견 하향은 국내 금융투자업계보다 시장에 더욱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엄 교수는 한국증권학회에 제출한 논문에서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썼다.

외국계 금융회사의 전망은 이러한 전력 때문에 늘 ‘세력’과 연관돼 생각된다. 한국 증시에 대한 상찬이 이어지지만 “주머니 채운 뒤 안심시켜놓고 도망가려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립서비스를 하다가도 필요하면 한국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그들의 주특기”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계 금융회사의 진단 역시 국내 금융투자업계의 전망처럼, 참고만 하고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