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용산역 정차 못하면 국내외 관광객 수송 차질 빚는다
입력 2013-12-13 03:32
인천공항↔평창 KTX 무산 위기 파장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공약이었던 ‘인천공항∼평창 KTX 노선’의 핵심은 서울 용산역을 정차하는 것이다. 인천공항∼평창을 93분 만에 주파하는 고속열차를 국내외 관광객이 많이 이용하려면 서울 도심을 거쳐야 한다.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지난 9월 “당초 약속대로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KTX가 용산과 청량리를 거쳐 평창과 강릉까지 환승 없이 운행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승강장 구조 등의 문제로 용산역 정차가 여의치 않다는 사실이 파악되면서 정부는 서울역 우회, 용산역 구조변경, 임시 승강장 설치 등의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모두 현실성이 떨어진다. ‘KTX 용산 정차’를 기정사실로 알고 있던 강원도와 평창올림픽조직위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 “용산역 정차 어렵다”=용산역 승강장 높이를 KTX가 다닐 수 있게 ‘저상홈’으로 낮추려면 평일 기준 240회 이상 오가는 중앙선과 경춘선 ITX의 정차를 포기하거나 단축운행 해야 한다. 기존 승강장 앞뒤로 KTX용 승강장을 추가 설치하는 것도 쉽지 않다. KTX 운행을 위한 인천공항철도 개량공사는 현재 10량짜리 KTX산천(길이 201m)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 용산역에 새로운 KTX 승강장을 만들려면 최소 201m의 여유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용산역 1·2번 승강장 앞뒤 여유 공간은 각각 150여m와 180여m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12일 “(승강장 공간 부족 등으로) 현재 인천공항∼평창 KTX 정차역으로 용산역을 사용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시인했다. 지난 9월 국토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재확인한 ‘용산역 정차’ 약속을 3개월 만에 사실상 뒤집은 것이다. 철도시설공단 건설본부 관계자도 “당초 KTX급의 빠른 운송수단을 운용하겠다고 했지 구체적으로 KTX라 명시하지는 않았다”며 한발 물러섰다.
KTX가 아니면 인천공항∼평창을 93분 만에 가기는 불가능하다. 현재 국내 열차 가운데 KTX를 제외하고 가장 빠른 건 ITX청춘으로 최고 속도가 시속 180㎞에 불과하다. 인천공항∼평창 노선과 잇기 위해 원주∼강릉선에 KTX용 철로를 깔고 있는 상황에서 ITX를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국토부는 원주∼강릉선 철도 건설에 2014년에만 8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ITX로 변경할 경우 시속 250㎞ 이상 달릴 수 있는 철로를 만들어놓고도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용산역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서울역 정차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서울 도심의 유일한 철도 건널목인 서소문 건널목 등 노후 시설물도 많아 열차의 고속 운행이 불가능하다.
◇무책임한 공약에 국가 신뢰도 추락 우려=국토부는 청량리역만 정차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천공항∼평창 KTX는 올림픽 기간에 찾아오는 외국인을 위한 한시적 열차의 성격이 강하다”며 “청량리에만 정차해도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 내국인의 올림픽 관광이 어려워진다. 천문학적 투자금액을 감안하면 올림픽 이후 활용방안까지 고려돼야 한다.
1998년 일본 나가노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설치된 나가노 신칸센은 인천공항∼평창선의 롤 모델이다. 나가노는 도쿄역, 우에노역(도쿄 서북부) 등 도쿄 도심과 연결돼 성공적 동계올림픽을 치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쿄역은 일본 각지로 가는 신칸센이, 우에노역은 나리타공항을 오가는 공항철도가 연결돼 있어 내외국인 모두 나가노를 쉽게 방문할 수 있었다.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나가노는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여행지로 자리매김했다.
강원도 관계자는 “인천공항∼평창 노선은 올림픽만을 위해 만드는 게 아니다. 강원도 입장에선 용산역 정차가 가장 좋은 선택”이라며 “국책사업이라 강원도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유치위원회 측도 “이용객들이 편한 용산역에 정차하는 게 좋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사립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실제로 공약이 무산된다면 국제사회에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며 “그렇게 해도 앞으로 다른 국제행사 등을 유치할 때 경쟁국으로부터 공격의 빌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천공항∼평창 KTX 노선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내걸었던 공약이다. 정부는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인천공항∼평창을 68분 만에 주파하는 고속열차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새 철로 건설 대신 기존 노선을 활용키로 하면서 이미 소요 시간을 93분으로 수정한 상태다.
글·사진=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