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러의 민낯] 해고 원한… 이별 앙심… 보복형 악플 48명 ‘최다’
입력 2013-12-13 01:53
“저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올 초 ‘한가인 닮은꼴’로 불리며 주목받았던 신인 탤런트 고두림씨가 악플러들에게 눈물로 호소하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TV 전파를 탔다. 고씨는 ‘네가 왜 한가인 닮은꼴이냐’는 욕설 댓글에 시달려 우울증세를 겪었다고 했다. 무심코 두드린 컴퓨터 자판에 눈물을 흘리는 건 고씨 같은 유명인만이 아니었다. 국민일보가 최근 형사 처벌된 악플러 100명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악플러들은 평범한 이들을 향해서도 날선 칼날을 겨누고 있었다.
◇원한에 사무쳐…‘보복형 악플러’=누군가와 갈등을 겪다 공개 망신을 주려고 악성 댓글을 다는 ‘보복형 악플러’가 형사 처벌된 100명 중 48명이나 됐다. 특히 여성 악플러 27명 중에는 무려 74%인 20명이 사적 원한에 의한 보복형 악플러였다. 남성은 73명 중 28명이 이에 해당했다.
보복형 악플은 주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작성됐다. 아파트 입주민 커뮤니티, 동호회 카페, 주식 투자자 모임 등 소규모 친목모임이 대부분이다.
A씨는 서울 목동 학원에서 행정직원으로 근무하다가 해고되자 학부모 커뮤니티에 접속해 학부모인 척 댓글을 남겼다. ‘제가 느낀 학원 분위기도 그렇고, 원장님과 상담해본 결과 좋은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소문도 안 좋던 데요’라는 비방성 댓글을 세 차례 올려 벌금 100만원이 선고됐다.
친구 B씨 때문에 여자친구 C씨와 헤어지게 됐다고 오해한 D씨(40)는 앙심을 품고 B씨의 카카오스토리에 ‘B와 C가 부적절한 관계’라는 글을 남겼다가 지난 11월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댓글도 영업 수단…‘생계형 악플러’=충남의 오리고기 식당 종업원 E씨는 지난해 5월 인근 경쟁 음식점이 맛있다고 칭찬한 블로그에 ‘그 식당은 썩은 오리를 쓴다고 소문났다. 영업정지도 많이 받았다. 나라면 옆 가게에 가겠다’는 댓글을 남겼다. 대전지법은 E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수험생이 많이 찾는 인터넷 카페에서 특정 학원을 비방한 사례도 있다. F씨는 ‘○○학원에 다녔는데 강사진이 형편없어 삼수를 하고 있다’는 글을 남겼지만, 실제론 그 학원에 다닌 적이 없는 대학생이었다. F씨는 다른 학원 강사의 부탁으로 댓글을 쓴 거였다.
인터넷에서 소비자 모임이 활발해지며 경쟁 업체 비방글을 올렸다가 처벌된 사례도 늘고 있다. 일반 소비자인 척하며 악플을 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소비자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그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유 없는 비방…‘묻지마 악플러’=대형 포털사이트나 일간베스트(일베), 디씨인사이드(디씨) 같은 대형 커뮤니티에 주로 출몰했다. 25명으로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디씨에서 악플을 작성한 경우가 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베 4명, 포털 4명 등이었다.
지난해 9월 대학생 G씨는 일베에 올라온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 인터뷰 기사에 ‘거기 XX들 안타까운 척 위선 떨던데. 방송 끝나고 또 고기 X먹으러 나갈 거면서 XX들’이란 댓글을 썼다. 박씨가 고소하자 다시 ‘동물협회… 이름도 기억 안 나는 XX…’라고 글을 남겼다가 모욕죄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4월 KBS 드라마 보조출연자 버스가 전복돼 숨진 박모씨 유족을 향해 H씨는 겁 없이 자판을 두드렸다. 그는 ‘이동 중 버스 사고로 죽은 걸 어쩌라고. 완전 한 건 제대로 해먹으려고 작정했구만. 죽은 남편 팔아 팔자 고치려는 거 아냐?’라고 썼다가 벌금 100만원이 선고됐다.
◇선거 때면 기승…‘정치꾼 악플러’=지난 대선 직전 특정 후보 비방글을 올려 선거법 위반으로 21명이 처벌됐다. 전원 남성이고 3명 빼곤 모두 40대 이상이었다.
21명 중 18명은 박근혜 후보를 향해 악플을 달았다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1명은 문재인 후보, 또 1명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을 비방했다. 직업별로는 무직이 8명(38.1%)으로 가장 많았고 전문직도 4명(19%) 포함됐다.
I씨는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간 822차례나 박 후보와 직계가족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변호인은 “게시글로 특정 후보를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벌금 250만원이 선고됐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