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개… 음반 쪼개기… 뮤지션들 신보 홍보전 각양각색
입력 2013-12-13 01:50
지난달 13일 서울 방배동 한 카페에서 열린 가수 이적의 기자간담회. 그는 정규 5집 ‘고독의 의미’ 발매를 기념해 마련한 이 자리에서 자신의 신보를 소개하다 별안간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요즘 또래 가수들 만나면 음반을 어떻게 낼지를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눈다. 정규를 낼지, 싱글만 낼지, 음반을 쪼개 파트 1·2로 낼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달라진 음악 환경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10곡 안팎의 음악이 수록되는) 정규보다는 2∼3곡만 든 앨범을 내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긴 호흡의 음반이 좋아 정규를 발표했다. 어쩌면 나의 마지막 정규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고민은 비단 이적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다. 신보를 내놔도 앨범 단위가 아닌 개별 곡 단위로 소비되는 음악시장 풍토가 고착화되면서 가수들은 많은 곡이 담기는 정규 앨범 발매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타이틀곡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 곡들은 사장돼버리는 게 가요계 현실이기 때문이다.
◇‘선공개’ ‘음반 쪼개기’…각양각색 신보 홍보전=음반 단위의 음악 콘텐츠가 홀대받자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음반 수록곡 중 일부를 앨범 발매 전 미리 공개하는 ‘선공개’는 언젠가부터 당연한 일이 됐고, 음반을 파트 1·2로 나눠 공개하거나 4∼5곡만 실린 미니음반을 내는 일도 흔해졌다.
예컨대 가수 지드래곤은 지난 9월 정규 2집 ‘쿠데타’를 발표할 당시 수록곡 12곡 중 1∼5번까지의 트랙, 6∼12번까지의 트랙을 3일 간격을 두고 파트 1·2로 구분해 따로 공개했다. 앨범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노래도 ‘삐딱하게’ ‘늴리리야’ ‘니가 뭔데’ ‘블랙(Black)’ 등 4곡이나 됐다.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음반을 냈을 때 1∼2곡만 주목받고 마는 게 아니라 공들여 준비한 나머지 음악들도 두루 알려졌으면 해서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여성 듀오 다비치는 지난 3월 정규 2집 ‘미스틱 발라드(Mystic Ballad)’를 발표할 때 수록곡을 3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공개했다. 음반에 수록된 노래 총 10곡을 1곡→8곡→1곡 순으로 발표한 것이다. 다비치 멤버 이해리는 당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정성을 쏟은 정규 앨범이 나온다는 사실을 몇 차례 걸쳐서라도 더 알리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앨범의 가치, 제대로 된 평가 받아야”=가요계 일각에서는 뮤지션의 음악 세계를 풍성하게 담아내는 정규 음반의 가치를 되새겨볼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음악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는 멜론이나 Mnet 등 음원 사이트 음원 차트를 싱글과 앨범 차트로 구분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음반기획사 이사는 “미국 음악 차트인 빌보드 메인 차트가 ‘핫 100’(싱글차트) ‘빌보드 200’(앨범차트)으로 나뉘는 것처럼 음원 사이트 차트도 이원화돼야 한다”며 “각 음원 사이트들은 개별 곡의 인기도를 보여주는 차트 외에 음반 전체의 순위를 매기는 차트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음반을 직접 구매해 앨범 단위로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에피톤프로젝트,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등 인디 뮤지션들 다수가 소속된 음반기획사 파스텔뮤직이 대표적이다. 이 음반기획사에선 올해 10여장의 앨범이 발매됐는데, 이들 음반엔 음원 사이트에선 들을 수 없는 노래가 적게는 1곡에서 많게는 3곡까지 담겨 있다.
파스텔뮤직 관계자는 “음원 사이트에선 구할 수 없는 음악을 앨범에 담아 음반 판매량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리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단 사라져가고 있는 앨범의 소장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의도가 더 크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