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어 초연 뮤지컬 ‘위키드’ 글린다 역 정선아 “맹하고 예쁜 ‘하얀 마녀’에 푹 빠졌어요”

입력 2013-12-13 01:50


11일 오후 4시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 육중한 극장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공연 시작 4시간 전이어서다. 스태프의 안내로 뒷문을 통해 극장 2층 응접실에 안내됐을 때 ‘마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뮤지컬 ‘위키드’의 하얀 마녀 글린다 역의 정선아(29). ‘압도하는 미모’가 우선 들어온다.

‘위키드’는 인기 대중소설 ‘오즈의 마법사’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초록 마녀 엘파바와 하얀 마녀 글린다의 성장담을 담은 캐릭터 반전 뮤지컬. 2003년 브로드웨이를 달군 블록버스터로 지난해 5월 오리지널팀 내한 공연에 이어 지난달 22일 한국어 초연이 시작됐다. 한 달 이상 여유를 가져야 볼 수 있는 요즘 최고의 화제작이다.

“‘위키드’ 무대에 서는 건 뮤지컬 배우로서 꿈이죠. 미국 브로드웨이, 로스앤젤레스 공연을 포함 해외에서만 다섯 번을 봤었어요. 한국어 초연 오디션은 그래서 어떤 오디션보다 떨렸죠. 지난 늦여름 서울 약수동에서 오디션이 진행됐는데 비가 종일 내렸어요.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심사위원들 앞에 서자 뭔가 자신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비 오는 날 성량이 풍부해지거든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아랫입술이 도톰하니 매력적이다. 그 무렵 커트 머리는 치렁치렁할 정도로 자랐다.

“대본을 받아 쥐니 겁이 더럭 나더라고요. 서구에서 금발은 맹하고 예쁜 여인을 뜻하는데 그런 정서를 우리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거든요. 바로 그런 게 배우의 역량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든 거죠.”

그녀는 일요일에도 연습실로 달려갔다. 그도 모자라 “옥주현(엘파바 역) 언니 집에서 3일간 합숙했다”고 한다.

글린다는 야망이 가득한 공주 기질의 캐릭터. 하지만 관객이 그 야망의 눈빛을 보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미소가 우러나오도록 연기를 해야 한다.

“위키드는 무대 의상 한 벌 한 벌이 예술이잖아요. 그 예술을 위해 배우는 24kg의 무게를 입고 새털처럼 가볍게 무대를 종횡무진하고, 또 ‘큐티 걸’이 되어 노래를 해야 해요. 사랑하는 남자 피에로에게 ‘그가 심지어 생각이라는 걸 하는 것 같다니까’라며 멍한 구애 대사도 쳐야 하고요. 정신없는 여자죠. 사랑에 빠진 여자는 인종과 신분이 달라도 ‘천상 여자’더라고요. 저요? 하하하. (남자) 많∼∼죠!”

정선아는 캐릭터만큼이나 늘 유쾌하다. 스물네다섯 살에 머물러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포 굿’이라는 곡을 가장 아낀다. ‘태양에게 이끌리는 작은 혜성처럼 바위를 만나 휘도는 시냇물처럼 너라는 중력이 손을 내밀어….’

“뮤지컬이라는 태양에 끌린 것이 중학교 2학년 때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본 ‘브로드웨이 42번가’였어요. 중력이었죠. 엄마를 따라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면서 복음성가(CCM)를 즐겨 불렀던 게 배우가 된 계기였죠. 데뷔 13년이 됐어요.”

올해 그는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양손에 쥐었다. 생애 최고의 해였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 ‘아이다’ ‘모차르트’ ‘맘마미아’ 등 굵직한 작품은 그녀의 무대가 되는 순간 생기로 살아난다. 밉지 않은 ‘마녀’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