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67 대 30

입력 2013-12-13 01:31


“특정 지역 독식 막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나 일본식 석패율 제도 도입 추진할 때”

북의 백두산에서 남의 지리산까지 장장 1400㎞에 달하는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동과 서로 가른다. 동해안을 따라 뻗어 내려오다 태백산에 이르러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영·호남을 구분하는 자연적·지리적 경계가 된다.

죽령(竹嶺) 남쪽에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진 영남(嶺南)은 원래 울산, 언양, 동래, 기장 등의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고려 성종 2년(983년)에 전국을 10도로 나누는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했는데 그때 지금의 경상도를 영남도, 영동도, 산남도로 구분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에 비하면 호남(湖南)의 역사는 짧다. ‘고려사’에는 기록이 보이지 않고, 조선 세종 29년(1447) 때가 돼서야 문헌에 처음 등장한다. 유래에 관한 설도 여럿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엔 “김제 벽골제호(湖)를 경계로 전라와 충청을 호남과 호서로 부른다”고 씌어 있다. 그런가 하면 제천 의림지 남쪽이라는 설도 있고, 금강의 옛 이명(異名) 가운데 하나인 호강(湖江)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현 경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세 번째 설이 그럴듯하다.

백두대간은 지리적 경계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의 백두대간은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치유와 평안을 주는 가없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이나 현대 한국 정치사적 관점에선 이편과 저편을 가르는 절대적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경계선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억장의 벽이 되어 버렸다.

대치정국이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 2일 여야 의원 16명이 한자리에 모여 ‘동서화합포럼’ 출범을 선포했다. 참석 의원도 새누리당 8명, 민주당 8명 사이좋게 수를 맞췄다. 이 모임은 각각 경북, 전남에 지역구를 둔 양당 의원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어떤 모임인지는 포럼 명칭과 의원 출신지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서화합포럼은 내년 1월 1차 회의를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에서, 3월 3차 회의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갖기로 하는 등 앞으로 동서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모처럼 정치권이 박수 받을 일 한 건 했다.

지역구도는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병폐다. 이를 타파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매번 시늉만 하다 뱀 꼬리가 됐다. 지역구도는 한국 정치를 양분해온 다수 영남족(族)과 소수 호남족이 67과 30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장한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국회 의석 기준으로 새누리당 67석(부산 18석, 대구 12석, 울산 6석, 경북 15석, 경남 16석), 민주당 30석(광주 8석, 전남·북 각 11석)이 기본이니 이보다 더 확실한 장사가 없다. 논문 표절로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가 나와도, 도덕성에 중대한 흠결이 드러나도 ‘영남 1번’, ‘호남 2번’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동서화합포럼은 대구와 광주를 잇는 88고속도로 확장공사 조기 완료를 첫 번째 추진 사업으로 정했다. 2002년 시작된 확장공사가 지금껏 진행 중이다. 강산이 한번 변했음에도 공정률은 고작 60%에 머물러 있다.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두 지역의 시간적 거리 또한 멀게 느껴진다. 국토 발전이 서울∼대구∼부산, 서울∼광주∼목포의 남북축 중심으로 이뤄진 까닭에 대구∼광주, 부산∼목포의 동서축은 소외됐다. 왕래와 교류가 적으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노력들과 함께 제도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현재로선 특정 지역 독식을 예방할 수 있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나 일본식 석패율 제도 도입이 최선이다. 이들 제도는 도입될 듯 될 듯하다 기득권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경상도, 전라도 지명을 없애지 않는 한 지역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극단적 의견도 있다. 첫 술에 배 부를 순 없다.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망국적 지역구도가 해소될 거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동서화합포럼이 그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