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 데뷔-한국인 첫 국제심판 이석·구본옥 커플
입력 2013-12-12 01:37
“한국팀 편파 판정으로 울지 않게 할 것”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남자 핸드볼 준결승전. 대한민국은 중동 심판의 편파판정 탓에 홈팀 카타르에 28대 40으로 크게 져 3∼4위전으로 밀렸다. 특히 후반에 한국 선수 3명이 한꺼번에 2분간 퇴장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한국 핸드볼이 편파판정으로 눈물을 흘린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때마다 한국 핸드볼 관계자들은 “우리나라에도 국제심판이 있었으면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한탄했다.
세르비아에서 진행 중인 제21회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마침내 한국인 첫 국제심판 커플이 성인 세계대회에서 처음으로 휘슬을 불었다. 주인공은 이석(28), 구본옥(27) 심판이다. 이들은 7일(이하 현지시간) 열린 독일과 호주의 D조 예선 첫 경기를 통해 성인 세계대회에 데뷔했다. 9일엔 튀니지-헝가리전을 배정받아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한국인 국제심판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함에 따라 한국 핸드볼이 국제무대에서 편파판정에 시달리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회 한국 대표팀 자문위원인 백상서 한체대 교수는 “이석·구본옥 심판은 대한핸드볼협회가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커플”이라며 “국제심판은 동료의 국가가 치르는 경기를 맡게 되면 함부로 휘슬을 불지 못한다. 자국 경기에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이 심판과 고대부속고 핸드볼 선수 출신인 구 심판은 이번 대회에서 예리한 판정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대학에서 생활체육으로 핸드볼과 인연을 맺은 이 심판은 “도하 아시안게임 때 말도 안 되는 편파판정으로 한국이 패하는 것을 보고 국제심판이 될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회에서 한국 경기를 맡은 심판을 만나면 ‘경기를 공평하게 잘 진행해 달라’고 부탁한다. 지나가는 말로 얘기하지만 당사자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 바뀐 규정 등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한국에 통보하는 것도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제핸드볼연맹(IHF)도 이들의 활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럽 심판이 주를 이루는 상황에서 IHF는 비유럽권 심판들을 양성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일본과 중국엔 각각 3쌍의 국제심판이 활동하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는 더 많은 국제심판을 배출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비선수 출신 최초로 국내·국제심판이 된 이 심판은 “외롭고 힘든 길이지만 한국 핸드볼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명감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며 “다음 목표는 올림픽 경기와 세계대회 결승전을 맡아 보는 것이고, 핸드볼 국제 외교무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베오그라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