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전문 치과의사제 논란
입력 2013-12-12 01:34
보름 남짓 앞으로 다가온 새해 2014년은 치과 의료계로선 ‘태풍의 눈’과 같은 해다. 새해는 국내 치과의료 시스템에 일대 변화가 시작된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내년엔 주위 사람 중 누군가 치아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냥 “‘치과’에 가보라”식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치주과’나 ‘보철과’ 좀 가보라”고 말하게 될지 모른다. 그동안 치과 쪽에선 불가능했던 ‘○○전문’ 간판을 내건 치과의원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해는 짧게는 ‘전문의 시험 불실시 위헌’ 판정이 내려진 1998년 이후 16년, 길게는 치과 진료 시 전문과목 표방 규정이 의료법에 처음으로 명시된 1962년 이후 52년 만에 ‘전문 치과의사 제도’가 마침내 국민 앞에 맨얼굴을 드러내는 해다. 다시 말해 각종 치과질환 진료과목을 구강외과, 구강내과, 소아치과, 치과보철과, 치주과, 치과교정과 등으로 세분화해 각각 간판에 표시하는 치과의원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전문 치과의사를 법적으로 공식 배출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그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는 치과대학병원을 제외하곤 전문 치과가 한 곳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정부가 치과 의료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2013년까지 전문 진료를 표방할 수 없도록 금지해 왔기 때문이다. 새해 2014년은 바로 이 족쇄가 풀리는 해다.
그러나 전문 치과의사 제도는 정착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타과 질환 진료 제한 규정이다. 치과 환자는 특성상 한 개의 치아에 대해 충치, 치주(잇몸), 보철치료 등을 한 곳에서 차례로 또는 동시에 받아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전문치과에선 이것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전문 진료를 표방할 경우 타과 질환을 못 보게 진료 범위를 제한해 놓은 탓이다.
그래서 환자 입장에선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려고 ‘치과보철과’를 방문했다가 충치나 치주염 때문에 바로 시술을 받을 수 없는 경우 다른 일반 치과 또는 치주과를 찾아 충치나 치주염을 치료한 다음 다시 가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그게 싫으면 주 질환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다 볼 수 있는 일반 치과의사를 찾으라는 얘기다. 이상한 것은 이런 전문의 진료 제한 규정이 치과 쪽에만 적용된다는 점이다. 피부과 전문의가 피부질환자에게 필요할 경우 감기약은 물론 비뇨기과 영역의 발기부전 치료제까지 처방할 수도 있는 것과 달리 전문 치과의사에겐 그런 권한이 없는 것이다. 일부 뜻있는 치과 의사들은 이를 두고 ‘전문의가 아니라 반신불수 치과의사’라고 비꼬고 있다.
전문 치과의사 제도가 이렇게 시작부터 꼬이게 된 데는 전문의가 많이 배출되면 경쟁에 뒤처질 수 있다는 일반 치과의사들의 이해관계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대한치과의사협회 공인 전문 치과의사 수는 1570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치과의사 수 2만7000여명의 약 5.8% 수준이다. 중요 정책 수립 시 다수결 방식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치과의료 단체 속성상 소수의 전문 치과의사가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2007년 이전 수련의들에게 어떤 형식으로든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전문의 시험 응시 및 진료 범위 제한이 의료인 간 형평성에 위배되고 국민의 알 권리 및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전문 치과의사 제도가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려 치과 의료계의 발전과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하게 하려면 치과의사 개개인이 기득권 지키기에 몰입해선 곤란하다. 특히 일반 치과의사들은 개인의 이익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치아 및 구강 보건을 책임진다는 사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새해 2014년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치과의사도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설 자리가 없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