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디지털 원형감옥

입력 2013-12-12 01:32

원형감옥을 뜻하는 팬옵티콘. 18세기 말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고안한 교도소를 말한다. ‘다 본다’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중앙 원형 감시탑에서는 간수들이 감방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감시탑 내부는 항상 어두워 죄수들은 간수를 보기는커녕 그들이 자신들을 언제 감시하는지 알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벤담의 원형감옥을 사회철학 개념으로 확장했다. 그는 단순 건축물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자의 통치 방식으로 보았다.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1949년 출간한 소설 ‘1984년’에서 텔레스크린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이 소설에서 텔레스크린이라는 감시카메라로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사상경찰이 공공장소와 사무실은 물론 심지어 가정 내 대화까지 엿듣는다. 거리 곳곳에 ‘빅브러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빅브러더는 사회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기관을 암시했다.

지난 2000년 봄 독일에서 ‘빅브러더’라는 리얼리티쇼 방송 프로그램이 관심을 끌었다. 오웰의 소설 제목과 아이디어를 재연했다. 제작진은 24시간 감시카메라가 돌아가는 컨테이너에서 지원자들이 3개월간 생활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감시받는 인간들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할지 관심사였다.

얼마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주요 국가 대통령과 총리, 정보기관, 심지어 주요 IT 기업 등을 수십년간 도·감청한 사실이 드러나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분개한 독일 등 국가 지도자들은 물론 구글 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들까지 NSA의 도·감청 활동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위치를 실시간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구글은 고객의 시간대별 동선은 물론 자택과 회사, 방문지 위치까지 파악했고 지메일로 사용자 정보와 사생활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못 보는데 24시간 나를 들여다보는 ‘디지털 빅브러더’가 도처에 깔려 있다. 출근 후 퇴근까지 내 모습은 수없이 CCTV에 찍힌다. 휴대전화, 신용 및 교통카드 결제, 인터넷, SNS, 은행거래 중 내 정보가 줄줄 새어나간다. 어딘가로 넘어간 내 정보는 곧바로 나를 감시하는 도구가 된다. 이른바 빅데이터는 나의 미래행위까지 예측한다. 디지털 시대에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마음이라도 편할까. 이미 디지털 원형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