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영옥] 정책 대못, 뽑을 수 없다면
입력 2013-12-12 01:29
요사이 바빴다. 송년이기도 했지만 13일 세종신청사로 이사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잘 알고 지내는 공무원들과 ‘송별 인사’가 연이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청사 세종시 이전은 1년 전 1단계로 총리실, 기획재정부 등 6개 부처가 완료했다. 이번에 2단계로 문화부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6개 부처가 세종시에 둥지를 틀게 된다. 외교부, 통일부 등 안보 관련 부처를 비롯한 나머지는 서울에 남기로 했으니 이로써 ‘행정수도 세종시대’는 본격 개막하게 됐다.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소송까지 가는 등 국민적 논란과 갈등을 불렀던 사안이다. 하지만 이처럼 계획에 따라 실행이 되는 걸 보면 ‘정책 대못’의 파워가 느껴진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만났던 공무원들은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수도권 과밀 억제, 지역 균형 발전 기치의 진짜 정책 대못은 전국 11개 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이라고 하나같이 말했다. 한국가스공사는 대전으로, 광물자원공사는 원주로, 우정사업조달사무소는 김천 등지로 간다. 이렇게 공공기관들이 전국 사방으로 흩어진다.
영진위의 부산 이전 의미 커
사실 세종시는 서울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다. 그래선지 서울에 주거를 두고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부산 진주 나주 등 먼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의 종사자들이 매일 서울에서 출퇴근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두 달여 전 부산으로 옮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나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서울에서 필요한 인력을 빼곤 임직원들이 사실상 전부 짐을 꾸렸다고 한다.
그래서 409개 공공기관을 전국으로 분산시킨 혁신도시 건설은 수도권 분산의 진짜 대못, 아니 말뚝이다.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과 나주는 혁신도시의 명암을 잘 보여준다.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 중 영화 산업의 진흥이나 심사와 관련된 영진위, 영등위의 부산 이전은 의미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로 ‘국제적 영화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부산의 지역적 성격을 감안하면 충분히 시너지가 기대된다. 지역 고용 창출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영진위는 최근 신규 직원을 채용했는데, 3분의 1이 지역 출신이다. 영진위 관계자는 “지역의 각 대학에서 적극적으로 취업 설명회를 요청한다. 취업에 숨구멍이 트여서인지 대학생들 스스로도 견학을 많이 온다”고 했다.
이에 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와 콘텐츠진흥원의 전남 나주 이전은 생뚱맞다. 문화적 연관성을 찾기 힘들어서다. 콘텐츠진흥원이야 게임 영화 등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문제될 게 없다. 휴대전화 단말기로도 영화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예술위가 다루는 공연과 전시는 성격이 다르다. 오페라·연극 등 볼만한 공연이나 괜찮은 블록버스터 전시는 서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다가 “나, 대학로에서 연극 본 지 1년도 넘었어”라고 하는 ‘문화 결핍’ 직원이 예술후원대상 선정 작업을 하는 ‘코미디’가 생겨날 수 있다.
지역적 문화 다극화 도모해야
그래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공공기관 이전은 빼도 박도 못하는 대못이 박힌 사안이다. 그렇다면 상식과 관행이 달라져야 한다. 예술위만 보자. 지금의 예술사업 지원구조에선 예술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했다. 심사위원도 서울에 있는 교수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지방에서 행해지는 뮤지컬이나 전시에 관심을 갖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이제 서울이 문화예술을 독점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 지역을 중심으로 특성 있는 문화가 창출돼야 한다. 서울에 대한 지방의 개념이 아니라 당당한 지역 개념으로 바꾸고 문화 다극화 시대를 열어가는 정책적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다.
손영옥 문화생활부장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