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미발굴 수필 ‘1944년경의 이야기’ 발견

입력 2013-12-11 01:33


“때로 붓고 가슴을 쥐어뜯고 살았던…”

시인 미당 서정주(1915∼2000)의 미발굴 수필이 새로 발견됐다. 계간 문예교양지 ‘연인’ 겨울호(통권 20호)에 실린 ‘1944년경(頃)의 이야기’는 미당이 1947년 경찰 전문잡지인 ‘민주경찰’ 9월호에 발표한 글이다. “나의 죄라는 것은 벌써 7년 전인가 8년 전에 전문학생시절에 그들과 놀면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소. (중략) 내가 있던 곳은 삼감방(三監房)이었는데 여기에 오랫동안 나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은 두 명의 절도와 한 사람의 영아 살해범(殺害犯)과 또 한 사람의 살인미수 혐의의 노인이었소. 이밖에도 징용도피자와 도박꾼과 작은 절도 횡령 등 때 따라 많은 출입(出入)이 있었으나 그들은 나와 깊이 사귈 기회가 없었음은 물론이오.”

수필이 발표된 것은 해방 후이지만 이 글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광복 이전인 1944년 고향 친구인 윤길이와 일본인 형사에게 체포돼 고향인 고창경찰서 감방에서 지낸 체험담이다. 미당이 학창 시절 젊은 혈기로 친구들과 이야기한 것이 빌미가 돼 체포됐다는 것이다.

수필은 미당이 그 감방에서 한 달 동안 “공포와 초조와 하수도 속에 내리 떨어진 것 같은 불쾌감 속에서 나날이 말라 들어가고 때로 붓고 가슴을 쥐어뜯고 살았”던 이야기들, 감방 사람들과의 단편적인 일화를 담고 있다. 이 수필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한 서지학자 김종욱씨는 “‘민주경찰’은 해방 직후에 나온 최초의 경찰 전문잡지로, 이런 잡지에 미당이 글을 실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미당이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을 기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계간 ‘연인’은 특별기획 ‘특종자료발굴’ 코너에서 미당의 수필을 비롯해 백석의 산문 ‘사랑이 엇더트냐’(1927), 소설가 이효석의 시 ‘님이여 들로!’, ‘살인’(1927), 나혜석의 수필 ‘자연과 인생’(1933), 시인 김영랑의 시가 ‘애국’(1949)을 소개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