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만델라] ‘화해의 추모식’…국가·인종·종교 이해관계 하나로 녹였다
입력 2013-12-11 03:31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추모하는 공식 행사가 10일(현지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금세기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세계 각국 대통령과 총리, 왕과 여왕 등 전·현직 정상 100여명이 참석해 웬만한 다국적 정상회담을 압도했다.
각지에서 몰려온 추모객은 9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본 행사장 FNB 월드컵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이들이 국가와 종교, 종파 등 각종 이해관계를 떠나 나란히 앉은 모습은 생전 화해와 평화를 추구한 만델라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행사장 입장은 오전 6시부터 시작됐다. 추모식 시작 5시간 전이었다. 추모 인파는 동트기 전부터 FNB 경기장 주변에 운집해 있었다. 이들은 경기장으로 들어가며 춤추고 손뼉을 쳤다. 축제를 연상시켰다. ‘만델라 영원하라(Mandela Forever)’라는 문구가 적힌 숄이나 남아공 국기를 몸에 두른 사람도 있었다. 일부는 남아공 줄루족 언어로 “만델라는 잠들지 않았다. 기도하고 있을 뿐”이라고 노래했다.
요하네스버그 중심부에서는 수천명이 무료 열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몰려왔다. 남녀노소, 모든 인종이 승강장과 열차 안에서 뒤섞였다. 추모식에 참석하려고 가게 문을 닫았다는 샤힘 이스마일은 “그(만델라)는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데려가셨다”며 “우리는 영원히 그를 간직할 것”이라고 전했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행사 때까지 이어졌다. 메마른 아프리카에서 비는 축복을 의미한다.
추모식은 오전 11시 남아공 국가 합창으로 시작됐다. FNB 경기장은 만델라가 2010년 월드컵 폐막식 때 생전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장소다.
연단에는 만델라 일가를 대표하는 탄둘록소 장군과 만델라의 손자·손녀 4명이 차례로 올랐다. 이들은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조사를 읊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각국 정상의 추도 연설이 이어졌다. 반 총장은 “남아공의 민주주의는 남아공만을 위한 승리가 아니라 같은 이상을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단에 오를 때 추모객들은 어느 때보다 환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젊은 시절 만델라에게 받은 영향을 언급하며 만델라를 ‘역사의 거인’이라고 칭송했다. 그는 “만델라는 우리에게 행동의 힘을 보여줬다”며 “그는 대리석으로 만든 흉상이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한 남자였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헌사하기에 앞서 연단에 오를 때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오랜 앙숙관계인 양국 정상이 손을 맞잡은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카스트로 대통령도 만델라에게 바치는 헌사를 낭독했다.
남아공 정부는 전날 성명에서 91개국 수반과 10명의 전직 정상이 추모행사에 참석한다고 전했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장례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 80여명을 크게 웃도는 인원이다.
미국에서는 살아 있는 전·현직 대통령 5명 중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제외한 4명이 참석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동행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반인종주의 위업에 커다란 공헌을 한 넬슨 만델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 인민은 남아프리카 인민이 낳은 훌륭한 아들인 넬슨 만델라가 오랜 병환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매우 애석한 마음으로 접하고 있다”며 만델라의 업적을 소개했다.
남아공 정부는 11일 프리토리아 정부청사에 만델라 시신을 안치해 3일간 조문을 받는다. 만델라는 15일 고향 쿠누에 안장된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