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 두 얼굴… 앞에선 대화 뒤에선 강경진압

입력 2013-12-11 01:36

반(反)러시아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정부 측이 시위대에 협상을 제안하는 동시에 과격 진압을 이어갔다. 시위대가 결사항전을 외치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사태가 격렬한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물리적 충돌 우려도 커지고 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야권 대표들을 만나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하겠다”고 밝혔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사태를 해결하려면 야권과 원탁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레오니트 크라프축 초대 대통령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크라프축, 레오니트 쿠치마, 빅토르 유셴코 등 시위대 측에 서 있는 전직 대통령 3인과의 회동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정부 측이 대화 의사를 전한 이날 수도 키예프 지역 시위 현장에는 내무부 치안유지군과 경찰 시위진압부대가 투입돼 독립광장을 포위했다. 시위대가 점거 중인 시청을 급습하고, 인근 정부청사에 병력을 추가로 투입해 시위대가 세운 바리케이드를 강제로 철거했다. 현지 주간 제칼로네델리는 이 같은 조치가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지시로 내려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법원은 시위대 해산을 명령했고, 경찰은 법원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강경 대처하겠다며 엄포를 내린 바 있다.

복면을 한 무장괴한이 최대 야당인 바티키프시나(조국당)의 당사를 급습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들은 당사 사무실에 있던 컴퓨터 서버를 탈취해 갔다. 나탈리아 리소바 조국당 대변인은 “괴한의 급습이 경찰의 비호 아래 이뤄졌다”며 정부 측 지시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경찰은 부인했다. 현지 온라인 매체인 우크라인스카 프라브다는 이번 급습이 첩보기관인 국가보안국(SBU)의 소행이라고 전했다. SBU는 옛 소련의 국가보안위원회(KGB)를 계승한 기관으로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에 해당한다.

시위대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가 겉으로는 대화를 촉구하면서 뒤로는 무력 진압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 지도자들은 당국의 진압 움직임에 맞서기 위해 시민들에게 독립광장으로 나와 줄 것을 호소했다.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어린이와 노약자는 광장을 떠나라고 했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조국당 대표는 “우리는 우리의 독립광장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긴장 상황을 완화하고 야당 지도부와 대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시위대에 대한 폭력 진압을 우려했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폭력은 설 자리가 없으며 전략적 우호관계에서 이는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적 시위대를 대상으로 한 모든 폭력행위에 대해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