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빨고 이유식 만들고… 전업 아빠 7개월, 육아 달인 되다

입력 2013-12-11 01:29 수정 2013-12-11 14:52


정신과전문의 정우열씨의 ‘육아 일기’

“경제 활동뿐만 아니라 가사와 육아까지 부부가 같이해야죠. 육아에서 엄마가 1순위고, 아빠는 ‘옵션’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아내의 임신기간은 남편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임신했을 때 집안일 분담을 습관화시켜야 육아에도 동참하게 됩니다.”

여성운동가의 주장일까? 아니다. 7개월간 ‘전업 아빠’로 맏딸을 키운 정신과 전문의가 아빠들을 향해 던지는 ‘돌직구(직언을 가리키는 유행어)’이자, 예비 엄마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육아하는 아빠 ‘육아빠’ 블로그를 운영하며 엄마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정우열(34)씨를 지난 4일 만났다. 서울 도곡동 정씨 자택 거실은 ‘붕붕 자동차’를 밀며 ‘달리자’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와 까르륵 웃는 은재(20개월)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정씨는 처음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열심히 뒷바라지해줄게”라고 답했던 보통 남편이었다. 은재를 낳을 즈음 직장을 그만두게 된 정씨는 구직을 미룬 채 출산휴가를 받은 아내와 함께 은재를 키웠다.

“아내의 산휴가 끝나갈 쯤 고민이 많아졌어요. 장모님은 아직 일하시고, 어머니는 집이 너무 멀고. 아이돌보미의 도움을 받을까도 생각했었습니다.”

첫돌 전까지가 부모와의 애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정씨는 앉은 김에 쉬어 간다고 전직을 미루고 전업 아빠를 택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부터 올 2월까지 오로지 은재 키우기에 열중했다. 그는 “수유만 빼고 나머지는 ‘전업맘’과 똑같이 했다”고 큰소리쳤다. 천기저귀가 좋다는 말에 하루에 한 번은 꼭 천기저귀를 채워 똥 기저귀도 빨아 봤다. 이유식도 직접 해 먹였고, 육아 우울증도 경험했다니 허튼 소리는 아니다.

“혼자 아이 키운 지 1개월쯤 됐을 때입니다. 그 때 은재 엄마는 매일 야근을 했어요. ‘내가 왜 아이를 돌보느라 이 고생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까지 났습니다.”

우울증에 발목이 잡힌 정씨는 블로그에 ‘육아는 왜 하는 걸까?’라는 글을 올렸다. ‘엄마니까’라는 답이 제일 많이 올라왔다, “그래. 내가 아빠니까 은재를 키워야하는 거야!” 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그는 동물원 미술관 백화점 등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은재와 함께 외출했다. 기분도 나아지고, 무엇보다 은재가 좋아하더란다. 엄마보다 체력이 좋아 외출이 더 쉬웠다는 그는 아빠이기 때문에 은재를 더 잘 키울 수 있었다며 아빠육아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엄마들은 잘해 주려는 마음에 아이들을 통제하게 됩니다. 저를 비롯해 아빠들은 방목하는 편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율성이 키워집니다. 또 아빠의 돌봄을 받은 아이들은 사회성이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 엄마들은 떠 먹여 주거나 흘리는 것을 그때그때 닦아주지만 그는 아이가 혼자 어지르면서 먹도록 그대로 둔다는 것. 그러면 아이는 밥을 한 톨씩 집어 먹기도 하고 바나나를 주무르기도 한다. 이 같은 아이 중심의 식사는 오감 발달과 근육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주위의 반응은 어땠을까? 은재 엄마 전보람(33)씨는 “친구들은 ‘로또 대박’이라면서 부러워했다”고 자랑했다. 정씨는 “가장 걱정됐던 부분이 어머니였는데, 쿨 하게 받아들여 주셔서 고마웠다”고 했다.

정씨는 재취업 때도 은재가 걱정돼 주 3회 출근하는 시간제를 택했다. ‘워킹 대디’가 된 정씨는 직장을 쉴 때는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도 시간제 근무를 하니 경제적인 손실은 있었지만 얻은 게 훨씬 많다고 했다. 우선 은재가 자기를 키운 아빠를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것이니 감정적인 측면에서 노후대책은 확실히 마련한 셈이고, 정신과 전문의로서 우울증을 경험한 것도 큰 소득이었단다. 또 은재를 키우면서 감정 다스릴 일이 많아 인격 성장의 기회도 됐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은재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달 ‘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를 출간함으로써 인기 블로거에서 육아 전문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요즘 대세로 자리 잡아가는 아빠 육아 문화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빠들에게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용기를 주고, ‘생각보다 재미있겠네’ 하는 도전의 마음을 심어주고 싶어 책을 냈습니다.”

정씨는 올봄까지만 해도 엄마 없이 유모차를 밀고 나오는 아빠들은 드물었는데 올가을부터 그런 아빠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그는 ‘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떴다’ 등 TV의 아빠 육아 프로그램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저처럼 ‘전업 아빠’가 되는 데는 걸림돌이 많지요. 일을 계속해도 육아는 아내와 공동으로 한다는 신념을 갖고 주말에는 아빠노릇을 제대로 해 아이 키우는 기쁨을 누려 보세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은재는 아빠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빠바라기’인 은재를 보면서 전씨는 둘째 포동이는 육아휴직을 하고 직접 키워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육아 전문가 은재 아빠의 도움을 받으면서.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