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사회적경제의 성공조건

입력 2013-12-11 01:45


필자가 사회적경제와 인연을 맺은 것은 오래되지 않다. 2010년 8월쯤 친구인 청와대 정책비서관과 점심식사를 했던 것이 그 계기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사회적기업 정책을 담당하게 되었다며 정책과 관련된 사항을 문의했다. 이후 사회적기업이란 생경한 단어에 이끌려 많은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현장에 가려고 노력했고 늦은 밤까지 현장 활동가들과 시간을 함께하려고 했다.

경제학을 하면서 항상 고민되었던 것은 바로 시장과 정부의 관계설정이었다. 결론은 단순히 시장과 정부만 있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불행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기존 시장은 소수 주주의 지배에 의해 운영되며 그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시장의 활력을 늘린다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정부 또한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 정부란 구체적으로는 정치인과 공무원의 세계를 말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해법 중 하나는 기존의 시장과 정치·관료체계의 외곽에 건강한 시민사회의 거대한 저수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사회적경제라는 점이 나를 이끌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너무 멀다. 사회적기업육성법(2007년) 이후 1조원 가까운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자립적 발전은 아직 요원하다. 협동조합기본법 발효(2012년) 이후 협동조합 설립 붐이 생겨나고 있으나 그 생존력에는 적지 않은 의구심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첫째는 사회적경제 영역이 향후 한국사회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비전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사회적기업 육성, 미소금융 등 개별적으로는 좋은 정책체계가 구비돼 있음에도 이 모든 것이 국정의 ‘브랜드’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개별 정책을 사회적경제 정책이라는 형태로 패키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 정책의 메시지를 명확히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생활의 기본이 ‘말(言)’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며, 학문의 기본이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듯 국정의 기본은 그 ‘방향성’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국정 어젠다로 설정한 이후에는 관계된 모든 정책들과 예산들을 통합·조율하는 것, 그리고 사회적경제를 한국의 복지 전달체계 속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부처는 사방에 분산돼 있다.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마을기업은 안전행정부, 자활은 보건복지부,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 등과 같이 모두 조각나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특별히 조율하는 것 같지도 않다. 정책의 칸막이는 여전히 완고하며 이에 대한 대대적 개혁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통합해야 할 때다. 경우에 따라서는 각각의 법률과 정책을 ‘사회적경제기본법’의 형태로 통합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셋째로 사회적경제의 성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회적경제 활동가(기업가) 양성이다. 협동조합이 잘 발달한 트렌티노 지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문맹률이 이탈리아에서 거의 최고 수준의 후진 지역이었다. 사회적기업이 발달한 스코틀랜드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무대가 될 만큼 황량한 지역이었다. 지금은 소득 면에서도, 생활의 질 면에서도 상당히 좋은 지역으로 뽑힌다. 결국 ‘사람’인 것이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노력을 조직할 수 있는 선구적 운동가 집단, 그 집단을 세대 간에 계승시켜 가는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2013년 한국은 복지가 화두다. 박근혜정부도 복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기존의 시장과 정부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복지와 사회적경제의 영역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비전, 실행체계 정비, 정부 예산의 사회적경제와의 연계 강화, 이것을 담당할 활동가 양성, 이 모든 것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시급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 듯해 안타깝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