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69)] 게임 중독 청년과 착한 사마리아인

입력 2013-12-10 13:22


어느 초신자가 내게 해 준 이야기다.

그의 친척 동생 중에 손을 못 쓰는 장애인이 있다고 한다. 장애가 있다 보니 어느 가난한 시골 총각과 결혼을 시키고 개인택시를 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가끔 구박했고 폭력까지 썼다. 다만 아들이 착하고 공부를 잘해서 그동안 참고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별안간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방의 국립대를 다니던 유일한 소망인 아들도 변했다. 점점 아버지를 닮아가고 어머니를 무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임 중독에 빠져 학교도 휴학하고, 학업 성적이 불량해 제적 직전까지 왔다고 한다. 아들은 매일 술과 담배, 게임만 하고 머리는 장발이며 목욕을 안 해 냄새가 보통이 아니라고 한다.

급기야 어머니에게 쌍소리까지 한다고 했다. 하루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내가 코피가 나서 아들을 깨웠는데 아들은 내게 화만 낼 뿐 자신을 방치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며, “겨우 피가 멈춰서 살았다”고 울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이 초신자는 그 말을 듣고 경악했다. 동생에게 ‘그런 아들을 어떻게 가만히 두냐’고 이야기하고 ‘아들을 포기하고 병원에 입원하라’고 자문해 주었다. 그러나 동생은 ‘우리 두 식구뿐인데 아들의 식사는 어떻게 하냐’며, ‘내가 죽더라도 아들을 돌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느 날 또 전화가 왔다고 한다. 한 달 후면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휴학계를 다시 내지 않으면 완전히 제적이 된다고 한다. 결국 이 초신자는 그 조카와 직접 전화 통화를 해 보았다. 그러나 조카는 마음을 열지 않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

다른 가까운 친척들과 상의해보니 모두 ‘그놈 참 나쁜 놈’이라며 흥분만 했다. 모두 욕을 하면서도 대안을 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나 몰라라’ 하는 태도였다고 한다.

이 초신자는 성경 말씀 속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자신을 계속 압박했다고 한다. 누가 그들의 이웃인가, 그리고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다가 잠을 설쳤는데, 계속 그 구절이 생각났다고 한다. 착한 이웃이 되려면 우선 자신의 친척부터 도와야 된다는 절박감이 엄습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조카에게 전화를 해 설득했고 우선 휴학계를 내 제적을 면할 수 있도록 해결했다. 학교 문제가 해결되니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다음 일은 조카의 마음을 돌리는 일이었다. ‘너의 불쌍한 어머니가 도시락을 배달하며 번 적은 돈으로 네가 먹고 살고 있는 것’이라며, ‘이제 어머니가 아파서 배달을 다니기가 힘드니 네가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조카는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였다. 조카는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새벽에 도시락 배달을 나갔다. 머리를 깎고 목욕도 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만들어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만들라고 조언해 주었다고 한다. 얼마 전 통화를 했더니, ‘이제 며칠 있으면 한 기업체에서 몇 달 간 근무할 예정’이라며 ‘등록금도 마련해서 학교생활을 시작하겠다’는 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카는 이 초신자에게 ‘무척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참으로 큰 변화다.

어느 날 조카가 또 전화가 왔다. 그는 ‘왜 나를 이렇게 도와주냐’고 물었다. 이 초신자는 ‘나도 너 정도 나이였을 때 아버지를 잃고 그 고통을 겪었으니 너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청년은 깊이 감격했다고 한다. 그는 이제 모든 병에서 벗어났다. 의기소침, 우울증, 사회에 대한 좌절감도 극복했고 새 희망의 앞날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나는 그 초신자에게 다음에 또 조카에게서 전화가 오면 ‘성경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착한 사마리아인의 예로 설명하고 이것이 너를 도운 것’이라고 고백하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성경 구절 하나가 젊은 청년을 구원했다. 그리고 또 그 청년은 다른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성경의 말씀에는 힘이 있다. 초신자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어 그가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했다. 좋은 크리스천의 모습이다. 좋은 교인의 모습보다 더 아름답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좋은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지만 말고 행해야 된다. 그 열매가 가난한 자, 절망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고 어려운 곳에서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좋은 크리스천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은혜를 받은 기분이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