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철] 산티아고의 길

입력 2013-12-10 01:42


“순례의 길은 역사적으로 스페인 국민을 이교도로부터 정신적으로 굳건히 지켜줬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 중 하나가 스페인의 ‘산티아고의 길’이다. 현지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다. 지난해 약 2500명의 한국인이 그곳을 방문했다. 아시아 국가 중 1위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방문객이 급증했다. 2012년 133개국에서 19만2488명이 걸었다.

스페인 왕국은 왜 기독교를 가장 신봉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스페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으며, 그 위에 거대한 성당을 건설하여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고 대답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산티아고의 순례 길’은 역사적으로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12명의 사도들에게 세계 각지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했다. 사도 야고보(야곱)는 지중해를 따라서 서쪽으로 항해한 끝에 이베리아 반도, 즉 스페인 땅에 도착했다. 야고보는 스페인에서 복음을 전파한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헤롯왕은 기독교 복음을 설교했다는 이유로 야고보를 처형했다. 그의 제자들은 시신을 거둔 뒤 방부 처리하고 배에 실어 그가 복음을 전파했던 스페인 땅으로 향했다. 이베리아 땅 어딘가에 묘지를 썼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사실이 기억에서 잊혀졌다.

813년 스페인 북쪽 한 들판에서 마치 별빛같이 반짝이는 빛에 의하여 야고보의 무덤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별들의 평야의 야고보 성인’이라는 스페인어 이름을 붙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고 불렀다.

당시 알폰소 2세 스페인 국왕은 그 장소에 사도 야고보를 기리는 대성당을 짓도록 명했다. 머지않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유럽의 3대 순례지가 되었다. 특히 프랑스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서 오는 긴 여정의 순례길을 바로 ‘야고보의 길’이라고 칭했다. 우리가 ‘산티아고의 길’이라고 부르는 길이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유럽으로부터 스페인으로 긴 행렬을 지었다.

수도승들은 물론, 예술가, 시인, 학자, 상인 등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스페인 땅에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산티아고의 길’은 유럽 문화가 스페인에 유입되는 창구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전투에서 스페인 왕국이 침입자인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고 1492년 이사벨 여왕이 통일을 이룩할 때까지 ‘사도 야고보’는 기독교 정신의 지주가 되었다. ‘마호메트’를 외치는 아랍 군사들에 맞서서 기독교 병사들은 ‘사도 야고보’를 외치면서 싸웠다.

711년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해 800년 동안 지배했던 이슬람 세력에 스페인이 저항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스페인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 ‘사도 야고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의 길은 역사적으로 스페인 국민을 이교도로부터 정신적으로 굳건히 지켜준 의미 있는 길이었다.

오늘날 해마다 20여만 명의 순례자들이 스페인 국경 근처 피레네 산맥에서 산티아고까지 700여 ㎞를 30∼40일 동안 걷는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떠밀리듯 떠나야 했던 초로의 가장들, 미래를 꿈꾸며 자신을 가꾸어 온 젊은 대학생들, 아들딸의 진학을 위해 반평생을 바친 어머니들, 모두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면서 발걸음마다 고통 속에서 절제를 배우고, 인내를 배우고, 도전하는 정신을 배운다.

이 순례길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다시 꿈과 희망을 찾고, ‘피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거듭난다. 오늘도 사람들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다.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자기 자신을 다시 찾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는 말한다. “나그네여, 길이 없으면 당신이 걸어가는 곳이 바로 길이라오!”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