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재호] 실시간 검색어와 어뷰징
입력 2013-12-10 01:35
주요 포털사이트 초기화면엔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네이버)’와 ‘실시간 이슈(다음)’ 코너가 있다. 인기 검색어 상위 10개를 실시간으로 배열한 공간이다. 포털들은 이용자 편의와 선호를 이유로 서비스하고 있다.
이 실시간 검색어(이슈)가 포털 언론 개혁의 주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6일 한국언론학회 주최 특별세미나에선 인기 검색어를 활용한 기사 어뷰징(Abusing)이 주요 토론 의제로 올랐다. 인터넷 뉴스에서 어뷰징이란 부적절한 방법으로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하는 행위로, 통상 ‘동일기사 반복전송’을 지칭한다. 특히 지난 4월 네이버의 뉴스스탠드 시행 이후 언론사들이 반토막 난 조회수 만회를 노리고 어뷰징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포털, 힘센 언론 어뷰징 눈감아
특별세미나에선 지난 2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로 떠올랐던 슈퍼모델 미란다 커의 열애설 관련 어뷰징 사례가 제시됐다. 국내 언론 매체들은 미란다 커가 호주 재벌 제임스 파커와 열애 중이라는 현지 언론 보도를 인용, 총 543건의 기사를 네이버에 전송했다. 이 가운데 C닷컴은 60건, D닷컴은 84건을 쏟아냈다고 미디어오늘은 보도했다. 이 정도 심할까 미심쩍어 ‘미란다 커’를 다시 검색해봤다. 본사명으로는 각각 33건과 51건이고 계열사명까지 합하면 정확히 맞았다. 소위 메이저 언론사 소속인 두 닷컴은 어뷰징에서도 단연 메이저급이었다.
내친 김에 최근 인기검색어에 오르내렸던, 연예인 아닌 공인(公人)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21건 중 C닷컴 홀로 7건을 내보냈다. 오전 9시50분부터 오후 6시23분까지 8시간 33분간 1∼2시간 간격으로 어뷰징이 이뤄졌다. 문장 순서를 바꾸거나 문장 형태를 조금 달리 했을 뿐 기자명이 없는 ‘동일기사 반복전송’이었다.
네이버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검색 어뷰징이 맞다. 제휴 조건 위반이고 제휴 중단 사유도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네이버는 경고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군소매체 15개사를 비슷한 이유로 퇴출시켰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힘 있는 언론사라 방치 내지 묵인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와중에 네이버가 힘센 언론사들을 우선적으로 만나 뉴스 단가 인상을 협상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식이라면 취재에 혼신을 담아 공(功)을 들이는 건 사치이고 시간낭비다. 남보다 빨리 남의 기사를 베끼고 제목만 살짝 바꿔 반복 전송해야 ‘민완(敏腕)기자’로, 그리고 힘센 언론(?)으로 인정하는 풍토를 조장할 뿐이다. 뉴스스탠드 취지에 부응해 ‘기사실명제’를 도입하고 독자의 접근권을 고지하는 ‘뉴스미란다원칙’을 시행한 매체는 ‘바보 언론’이란 말인가.
인기검색어 먼저 손봐야
어뷰징 남발의 1차적 책임은 물론 정론의 본분을 망각한 매체에 있다. 그럼, 포털은 자유로울까.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인기검색어로 가득한 멍석(‘실시간 검색어’ 코너)을 깔아주면서 언론 탓만 하는 건 자기모순이다. ‘실시간 검색어는 로맨스고, 언론의 어뷰징은 스캔들’이란 식이다. 실시간 검색어와 어뷰징은 조회수란 공통분모에서 나왔다.
포털도, 언론도 조회수 ‘마법’에 취해 있는 한 건강한 저널리즘은 질식하고 만다. 포털이 먼저 실시간 검색어를 폐지하든지 전면 재·개편하는 것이 순서다. 그 다음이 어뷰징 퇴출이다. 어뷰징 남발 언론에 대한 규제도 공정하고 불편부당해야 한다. 그래야 온라인 뉴스 생태계와 언론 윤리가 바로 설 것이다. 자정 노력과 자율 규제 의지가 없는 포털에게 기다리는 건 법과 권력의 강제다. 여론과 정치권이 그걸 조준하고 있다.
정재호 디지털뉴스센터장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