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로 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정직한 공동체를 위한 지름길
입력 2013-12-10 02:29
‘건강한 사회’ 건설 독일을 가보니…
한국 사회에 ‘착한 사회’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열된 채 갈등과 증오를 키우기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상생하는 시대적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착한 사회 공감론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착하다’는 말을 본디의 뜻과 다르게 사용한다. ‘어수룩하다’ ‘속기 쉽다’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산업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굴곡진 근·현대사는 언어조차 제 뜻을 올바로 지니지 못하게 했다. 광복과 함께 시작된 이념 대립은 사회 집단을 두 패로 가르는 벽이 되었다. 흑백론은 이념의 장(場)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곳곳에 스며들었다. 차이를 우열(優劣) 또는 승패 문제로 바라보는 가치 전도가 일어났다. 착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 동화에서나 있는 일쯤으로 치부됐다. 압축성장의 개발시대를 관통했던 성공논리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를 낳았다. 부정과 비리를 저질러도 성공하면 그뿐이라는 가치관은 성장 이면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사회지도층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더했는지도 모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냉소가 퍼졌다. 부정부패를 합리화하는 문화는 그렇게 반세기 이상을 흘러 왔다. 착한 것을 갈구하는 민족의 DNA는 사라지지 않았다. 정의에 대한 목마름, 갈등 사회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월가 탐욕이 초래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성찰의 계기가 됐다. ‘정의란 무엇인가’ 책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경쟁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 아닌 화합의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이 회자되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대선 이슈가 됐다. 정의, 차이 인정, 공동선 추구 같은 개념이 확산되는 것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절실한 가치임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그래서 주목되는 게 관용과 다양성을 위한 ‘톨레랑스’, 정의와 나눔을 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언행이 곱고 바름’을 뜻하는 착함은 정의와 관용, 배려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직업을 뜻하는 단어인 베루프(Beruf)는 ‘사명’, 혹은 ‘부르심’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지난 10월 초 국민일보 창간 25주년 기념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방한한 자리에서 타국 사람들이 독일과 독일인을 연구할 때엔 반드시 이 단어에 담긴 깊은 뜻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몰트만 박사는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자신의 직업을 단순한 밥벌이가 아닌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내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장소며 지금 하는 일은 거룩한 신성이 깃든 부르심의 작업’이라는 관념이 오늘의 건강한 독일을 건설케 한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취재차 지난 10월 중순 다시 독일을 방문해 만난 인사들도 독일인의 소명의식을 집중적으로 얘기했다. 독일에서 생활한 지 7년 남짓 된 프랑크푸르트순복음교회 권병수 목사는 생활을 하면 할수록 독일인들의 정직성에 대해 놀란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독일인들의 가장 큰 장점이 정직이라고 본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독일인들은 정직하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말하려는 자세가 돼 있다. 정직이 실종된 듯한 사회에 살았던 한국인들로서는 가장 부러운 모습이다. 과연 무엇이 독일인들을 그렇게 정직한 국민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권 목사의 궁금함을 독일 개신교연합회(EKD) 사회과학연구소 게르하르트 베그너 소장은 명확하게 풀어줬다.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 소명의식이 사람들 속에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독일 교회가 잠자고 있는 듯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기독교 정신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베그너 소장은 독일 정치인들 중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가 이 같은 소명의식에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메르켈 총리 내각 구성원들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거친 삶 속에서 구현돼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독일에는 ‘자원봉사 천국’이라고 할 만큼 수많은 자원봉사기관들이 있다. 현재 개신교 사회봉사단체인 ‘디아코니’ 관련 기관이 독일 전역에 3만여 개 있다. 디아코니는 봉사와 헌신을 뜻하는 그리스어 ‘디아코니아’의 독일어. 이 디아코니는 복지국가 독일을 떠받치는 가장 강한 힘으로 40여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100만명 이상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아코니의 활동을 가능케 한 힘도 기독교적 소명의식이다. 디아코니뿐 아니라 가톨릭 봉사단체인 카리타스의 활동도 왕성하다.
디아코니와 카리타스는 소외된 이웃을 돕는 차원을 넘어 환경문제나 빈부격차 해소 등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 교계 리더인 마르쿠스 드뢰게 목사는 “종교개혁 시대 이래로 소명의식은 독일 사회를 지탱하는 커다란 축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독일인들은 성스럽게 교회만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베루프 의식’, 즉 부르심을 받았다는 관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긴 세월을 통해 체득했다”고 말했다.
독일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인 하이델베르크에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을 쓴 막스 베버(1864∼1920)의 묘지가 있다. 하이델베르크 남쪽의 ‘산상공동묘지’에 있는 베버의 묘비에 가 보니 “우리는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라는 글귀가 보였다. 그 글귀와 같이 베버의 정신은 독일 사회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베버는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예정조화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적인 영리 추구 행위가 신의 부름을 받은 증거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베버에 따르면 직업 자체를 소명으로 볼 때 근면하게 일하는 것은 신의 영광을 위하는 것인 동시에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길이다. 이로써 노동 자체가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며 신성시되고 근검과 절약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사람이 신으로부터의 소명을 다하는 사람이다.
함께 베버의 묘지를 찾은 프랑크푸르트비전교회 장광수 목사는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를 욕망 추구 이상의 의미 추구 현상으로 보았다”면서 “지금 자본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의식 회복”이라고 말했다. 종교사회학자인 실천신학대학원 조성돈 교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리더들부터 참다운 소명의식을 지닐 때 우리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점들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독일)=글·사진 이태형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