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영-박미라… 온몸에 얼룩진 멍 자국은 훈장 우생순 다시쓰는 ‘방탄자매’

입력 2013-12-10 01:39


“비가 오면 온몸이 쑤셔요.” “그래도 골키퍼라서 행복해요.” 수줍게 웃으며 보여주는 그들의 팔과 다리는 곳곳에 멍이 들어 있었다. “예상한 대로 슛이 날아와 막아내면 정말 짜릿해요. 그 맛에 골키퍼를 하죠.”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두 골키퍼 송미영(38·인천시체육회)과 박미라(26·삼척시청). 둘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제21회 세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 A조 예선 1차전 때 몬테네그로에 24점을 내주며 패해 의기소침했다. 하지만 9일(이하 한국시간)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 한국의 29대 26 역전승을 이끌어 낸 뒤 환하게 웃었다.

둘은 이번에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무대를 밟았다. 송미영은 지난해 12월 아시아여자핸드볼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1990년대 초 주니어시절 이후 20년만이다. 은사인 임영철 감독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박미라는 올해 SK핸드볼코리아리그에서 삼척시청의 우승을 이끌며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이런 선수를 임 감독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송미영과 박미라는 주희(24·대구시청)의 부상 때문에 이번 대회에서 번갈아 골문을 지키는 중책을 맡았다. 둘은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치른 모벨링겐컵 대회부터 한 방을 쓰며 친해졌다.

핸드볼 골키퍼의 운명은 가혹하다. 7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시속 100㎞로 날아오는 슛을 온몸으로 막아 내야 한다. 힘들고 부상이 많은 포지션이다. 송미영은 몬테네그로전 때 전반 10분쯤 상대의 슛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다. 한동안 코트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송미영은 이렇게 말했다. “공에 맞으면 아플 것 같죠? 희한하게도 안 아파요. 긴장하면 아픈 걸 못 느껴요. 그런데 그땐 정말 아팠어요. 모벨링겐컵 경기 때 맞은 부위를 또 맞았거든요.”

이때 박미라가 끼어들었다. “몬테네그로 선수가 일부러 공으로 언니 얼굴을 때린 것 같아요. 우린 보면 알거든요. 그런데 골키퍼는 맞아도 상대 선수를 때릴 수 없잖아요. 경고도 못 줘요. 그래서 분통이 터질 때가 많아요.”

최근 공격형 핸드볼이 유행하면서 골키퍼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예전엔 슛만 잘 막으면 됐지만 요즘엔 재빨리 속공으로 연결도 해야 한다. 최근 한 달간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초빙된 자우마 포르트(46·스페인)는 “유럽에선 골키퍼를 팀 전력의 50% 이상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도 못한 채 공으로 온몸을 난타당하는 송미영과 박미라. 두 사람은 골대 앞에만 서면 행복하다고 했다.

베오그라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