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잉락 총리 “의회 해산” 선언… 혼란 수습될까
입력 2013-12-10 02:27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24일 잉락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反)정부 집회를 계기로 촉발된 정국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잉락 총리는 9일 오전 정규 방송을 중단한 국영 TV를 통해 “다방면에서 의견을 들어본 뒤 왕실에 의회 해산령을 내려 달라고 요청키로 결정했다”면서 “민주주의에 따라 새로운 선거가 실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긴장된 모습에 떨린 목소리로 성명을 발표한 그는 “의회 해산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으며 민주주의 체제에도 부합한다”면서 “정부는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바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내각은 이날 오후 회의를 열고 조기 총선 일을 내년 2월 2일로 잠정 결정했다. 최종 확정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승인해야 한다. 태국 헌법은 의회 해산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총선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잉락 총리의 의회 해산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수텝 터억수반 전 부총리가 이날 대규모의 시위대를 동원해 정권을 무너뜨릴 ‘최후의 결전’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잉락 총리가 의회 해산을 발표하는 동안 방콕 시내 곳곳에서는 총리 청사를 향해 14만∼20만명의 시위대가 행진을 벌였다. 청사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빠차린 찬트라쿤카셈(30·여·마케팅 매니저)씨는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탁신 일가가 태국을 떠나길 바란다”며 “탁신 가족은 더 이상 태국을 통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8일 제1야당인 민주당 의원 153명은 잉락 총리를 규탄하며 의원직 총사퇴를 선언했다. 태국 의회는 500명으로 구성돼 있다.
잉락 총리가 의회 해산을 선택한 것은 조기총선을 통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정국불안을 매듭짓기 위한 것이다. 또 농민 등 절대 다수의 유권자가 자신을 지지하는 등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태국은 도시 빈민과 농민 등이 지지하는 집권 푸어 타이당과 대도시 중산층이 지지하는 민주당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1992년 이후 한 번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지 못했다. 즉 잉락 총리는 총선을 통해 사면법 파동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만회하고 야당의 견제도 정면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태국은 지난달 1일 하원에서 잉락 총리의 오빠인 탁신 친나왓 전 총리 사면이 가능한 포괄적 사면법안을 강행 처리했으나 이후 야당 등의 반발로 상원에서 법안이 부결됐다. 지난달 24일 10만명의 대규모 시위대가 방콕에서 잉락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으며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정부청사를 점거하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반정부 시위대는 잉락 총리의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텝 전 부총리는 “총선이 시행되더라도 탁신 정권이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라며 “우리는 탁신 정권을 뿌리 뽑는 것을 목표로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선거 대신 각계대표로 이뤄진 ‘국민회의’ 구성을 주장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